<6·25 60주년 기획 老兵은 말한다>“잃어버린 팔·다리 한국 발전으로 보상받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6·25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왼쪽)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이 지난 20일 미국 워싱턴 인근에서 이병희 재향군인회 미 동부지회장과 어깨동무를 한 채 전우애를 과시하고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선명히 쓰여 있는 이 글귀는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지금도 참전용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들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국땅에서 피땀을 흘렸던 참전용사들. 그들은 지금도 자유의 귀중함과 무게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의 유지 관리를 지원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재단의 윌리엄 웨버(84) 회장과 이병희(82) 재향군인회 미 동부지회장이 6·25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만났다. 두 사람은 현재까지 미 의회와 정부에 6·25전쟁의 의미를 되살리고 뜻을 기리는 각종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워싱턴의 대표적인 참전용사.

한국과 미국의 ‘대표 노병들’을 통해 그들의 희망과 바람, 전쟁의 세계를 들어봤다. 당초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앞에서 나란히 만날 예정이었으나 웨버 회장이 몸이 불편해 그의 자택에서 가까운 한식당에서 만났다. 갈비를 먹으면서 한국을 생각하고 6·25전쟁 당시의 전투를 회상한 그는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웨버 회장은 6·25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었지만 한국의 발전이 자신의 고통을 정당화시켰다고 믿고 있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걱정하는 것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6·25전쟁의 의미가 잊어지고 있으며, 그럴수록 끊임없이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김치가 생각난다는 웨버 회장은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한국 관련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고, 이 회장 역시 워싱턴 지역 참전용사들의 조직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웨버 = 나는 6·25전쟁에서 활동한 것을 후회하지도 않고 악몽의 순간을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심각하게 부상당했지만, 한국인이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국가를 만들어냄으로써 나의 고통을 정당화시켜 줬다고 느낀다. 나는 그게 한국민이 자유에 대한 열망을 보상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 미국의 많은 참전용사를 만났다. 그들은 여러 전쟁을 겪어왔지만 고맙다고 하면서 은혜를 갚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칭찬한다.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들이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다.

웨버 = 나는 공수 낙하산 부대의 대위로 1950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한국땅을 밟았다. 전쟁초기 북한군의 대공세로 피란을 떠나던 당시 한국인들의 고통을 아직도 기억한다. 또 1950년과 1951년 겨울의 쓰라린 추위가 생생하며, 북한군과 중공군이 우리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대공세를 폈던 기억이 그대로 떠오른다. 적을 대량으로 살상한 것은 비극이었지만, 남한을 정복하려던 그들 스스로가 가져온 비극이었다. 전쟁의 일부이긴 하지만 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감내하기 힘든 일이다. 1951년 원주에서 부대원 42명이 숨졌지만 사흘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고지를 지켰다. 그 와중에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에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이 = 나는 1952년 보병학교를 나와 양구전투에 파견됐다. 젊은 사람들이 6·25전쟁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평소에 6·25전쟁 바로알리기 운동을 벌이고, 학교 교육을 통해 홍보를 하는 게 중요하다. 6·25세대가 고령으로 해마다 급격히 줄어들어 더욱 걱정스럽다.

웨버 = 미국도 사실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것도 60년 전의 일이다. 미 역사책에도 6·25전쟁은 5문장으로 존재할 뿐이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사이에 끼어 있다. 한달에 1000명 이상이 죽어간 전쟁이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전쟁이나 이라크전쟁은 한달에 5~6명이 죽는다. 얼마나 끔찍한 전쟁이었나. 언론이 이 부분을 알리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중요한 역사로 남겨야 한다.

이 =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 등 우방국의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올바르게 역사를 인식하지 못할 때 개탄스럽다.

웨버 = 베트남전쟁 때는 TV가 한창 보급될 때다. 6·25전쟁 때는 집집마다 TV가 없었다. 베트남전쟁은 ‘리빙룸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전쟁을 24시간 접했다. 그래서 끔찍한 상황을 모두가 알고 기억한다. 6·25전쟁은 그런 점에서 잊어진 전쟁(forgotten war)이다.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귀환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지 6·25전쟁 참전용사들만이 전쟁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이 = 북한은 천안함 도발로 여전히 호전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다.

웨버 = 세계가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멈추게 해야 한다. 중국이 나서 북한에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충고해야 한다. 현재 남북한은 휴전협정상태로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 그럴수록 북한에 경고를 보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통일이 되면 대국이 될 수 있다. 중국이 20년 만에 동아시아의 강국이 되지 않았나.

이 =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유리벽을 설치하는 계획(문화일보 6월18일자 1면 참조)이 잘 진행되면 엄청난 것이다. 미군뿐 아니라 카투사 이름도 유리벽에 새겨넣는다는 발상은 획기적이다.

웨버 = 나는 5년 전부터 카투사를 추적해왔다. 카투사의 이름이 워싱턴 기념비에 새겨진다면 방문자들이 ‘아, 한국의 군인들도 미군과 함께 이렇게 많이 죽었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재단은 기부금에 세금혜택을 줄 수 있는 비영리재단이다. 이라크 및 아프간전쟁을 치르는 미 정부에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개축비용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참전용사 가족들이 현대차를 살 때 일정액을 참전 기념비 확장에 기부하겠다고 하면 세금혜택도 받고 자동차 판매도 늘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설득작업을 하겠다.

이 = 하루빨리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가 확장되기를 바란다. 한국 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하겠다.

워싱턴 = 글·사진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