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 기획 老兵은 말한다>“소년소녀병·학도병·지게부대는 ‘현대판 칼레의 시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효종(오른쪽) 교수와 양양조 책임연구원이 6·25 60주년을 맞아 최근 천안함 사태 등 국가안보와 국가의 의미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문화일보는 천안함 침몰사건 여파로 국가안보가 총체적 위기상황에 놓였던 지난 4월20일부터 특집기획 ‘노병은 말한다’를 연재했습니다. 천안함 피격으로 국가안보에 대한 총체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일본땅에서 펜 대신 총을 들고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 꽃다운 젊음을 전선에 바친 소년소녀병, “ 잃어버린 팔·다리 한국 발전으로 보상받았다”는 미군 참전용사 등을 일본과 미국을 비롯, 전투 현장, 유엔묘지 등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지난 14일 문화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박효종(63)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교수와 양양조(50)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을 모시고 ‘6·25전쟁 발발 60주년과 정전협정 57주년 조명’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습니다.

―발발 60주년을 맞은 지금 6·25전쟁은 국내외 학계에서 어떻게 평가, 정리되고 있습니까. 6·25 전쟁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전쟁이었으며, 앞으로 6·25의 교훈을 후세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박효종 교수(이하 박)=아쉬운 점은 6·25전쟁의 성격 규정, 개념 규정이 그동안 모호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기습 남침해서 외세까지 끌어들였는데도 명칭이나 개념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원주의 사회라 그런지 편리한 대로 10인10색으로 부릅니다. 어떤 정치인은 ‘실패한 통일전쟁’이라 부릅니다. 그냥 한국전쟁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유엔군이나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는 ‘Korean War’를 번역한 것에 불과합니다. 60년이 지났는데 목숨 바치고 피 흘리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전쟁에 대해 개념 규정을 제대로 해서 후세들에게 아버지나 선배 세대가 흘린 피가 아깝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과거 그냥 동족상잔이라고만 했는데, 그것은 ‘집안 싸움’ 식의 양비론으로, 남북한 모두 다 잘못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뭘 두고 싸웠는지 실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젊은 세대는 실상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누가 싸웠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의미론적인 가치부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6·25전쟁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양양조 책임연구원(이하 양)=전쟁 발발 50주년 때와 10년이 지난 지금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의한 남침이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세계에서 유일하게 침략 당사자인 북한만이 북침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쟁 관련 당사국들의 자료와 옛 소련 기밀 외교문서가 죄다 공개돼서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세밀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북한은 변화가 없습니다. 전쟁 때 자원하거나 동원된 노무자 숫자는 20만명이 넘습니다. 심지어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같은 분은 “한국에서 노무자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미군은 그에 상응하는 전투력을 집어넣어야 했고 노무자의 지원으로 전투 인력 부담을 상당히 줄였다”며 “전쟁의 절반은 노무자들이 치렀다”는 평가까지 해줍니다. 전쟁 전체 기간 피해 규모도 컸습니다. 예를 들어 인명손실은 미국 독립전쟁은 전체 인구의 약 3%, 2차 세계대전은 약 5%인데 비해 6·25전쟁은 남북한을 통틀어 10%에 육박했습니다. 인구 비례로 따질 때 인명손실이 대단히 많은, 참혹한 전쟁이었죠. 잘못된 판단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이처럼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역사적 실체를 잘 정리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60년이 됐는데도 학도의용군, 소년소녀병 등 조명해야 할 대상이 많이 있습니다.

▲박=소년소녀병, 학도병, 노무자(지게)부대 등 정말 이분들이야말로 ‘현대판 칼레의 시민’이라 부를 만합니다. 오귀스트 로댕이 조각한 ‘칼레의 시민상’이야말로 국가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웅변적인 대답입니다. 700년 전 프랑스의 칼레시를 포위한 영국왕은 칼레시에 당장 항복하지 않고 저항한 죄를 물어 6명의 시민들이 옷을 벗고 성문 밖으로 걸어나와 칼레시의 열쇠를 자신에게 바치는 죽음의 행진을 요구했습니다. 칼레시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자원한 생 피에르 등 6명의 공회당 시민들은 처자도 있고 젊기도 했습니다. 로댕이 조각한 칼레시의 영웅들은 고통과 고뇌 슬픔으로 얼룩진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이었습니다. 로댕은 고통이 새겨진 시민들의 조각상을 통해 한 국가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바로 이러한 시민들의 고통과 희생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했습니다.

60년 전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오는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맨손으로 피 흘렸던 그들이야말로 ‘칼레의 시민’이며, 그들의 명예를 기리고 국가가 보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13∼ 14위 경제 대국이고 자유질서도 높은 수준이며, 민주주의도 상당히 성숙했는데 거기에 걸맞게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산타가 거저 준 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민, 칼레의 시민들에 비견할 수 있는 지게부대, 소년소녀병, 학도병 등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단순히 기억의 의미를 되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유를 지킨 역사이기 때문에 그들을 돌볼 도덕적 의무를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다국적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와 정부와 군의 발표를 일부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믿지 않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양=북한은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조차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명확한 자료에 의해 전쟁관련 국가들, 과거 공산권국가들도 이의를 달지 않는 엄연한 사실인데도 북한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도 이와 똑같습니다. 조사과정에서 누가 도발했는지 객관성을 유지해 공동조사를 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이 알려졌는데 북한은 인정 안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남한에 의한 북침 주장을 우리 사회에서 똑같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동유럽 국가들도 새로운 자료에 의해 새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침 사실을 인정할 경우 정권의 정체성, 정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김일성-김정일 세습독재정권이 지속되는 한 계속 그같은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한의 북침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장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천안함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국제사회의 조사결과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북한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가안보와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박=저도 6·25전쟁과 천안함은 닮은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기습해서 쳐들어온 것, 그리고 기습공격 후 잡아떼는 것까지 닮은꼴일 뿐 아니라 천안함은 6·25전쟁의 현재진행형임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과서 중에는 북한이 남침을 하긴 했지만 전쟁발발 전에 휴전선에서 계속되는 분쟁이 있었다는 식으로 서술됐는데 이 대목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강경책을 써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런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국가안보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안위에 있어 여야, 보혁, 세대 간의 쟁점이 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새 둥지가 망가지게 되면 어느 알도 성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북한에게 면죄부를 준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호전성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이 하자는 대로 들어준다면, 그리하여 ‘비겁한 평화’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6·25전쟁 시 맨주먹으로 싸우다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영령들 앞에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는 행위로 그분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올해 천안함 사태가 주는 교훈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양=“나치서 해방된 네덜란드인으로서 6·25 참전은 의무였다”는 네덜란드 판 호이츠 참전 노병들의 증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 참전사’라는 책이 나왔는데 당시 그들이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참전하고 희생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인은 나치정권 치하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그같은 정신으로 참전했는데,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를 지원해준 나라들에 대해 고마워하고 그 국가들과 혈맹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양국 관계 발전에 있어 긍정적인 기회를 제공하게 될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을 겪었는데 6·25 6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참전 21개국에 대해 우리 국민은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박=6·25전쟁은 그동안 잊힌 전쟁이었습니다. 참전 21개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침략을 막을 수 없었겠지만 우리가 싸운 전쟁인데 왜 잊힌 전쟁이 됐을까요. 6·15남북공동선언이 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6·25전쟁에 대한 기억을 제압했습니다.

젊은이들이 6·25전쟁의 실체와 의미를 잘 모르는 이유는 초등학교부터 6·25전쟁에 관한 내용을 뺐기 때문입니다. 대북포용정책에 걸림돌이 된다고 그렇게 한 것인데 국가를 책임지는 세력으로서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6·25전쟁 때 맥아더 사령관이 전쟁광이었다며 미군 등 유엔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희생 없이 통일이 됐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의 적화통일에 의해 통일이 됐다면, 오늘날 우리는 김일성 동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현대판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고 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이뤄냈습니다. 6·25전쟁 때 우리 국민소득은 최빈국 50∼60달러였는데 참전국 일부 국가보다 더 나은 번영을 구가하게 된 것은 자유가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 대담 ]
박효종 -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교수
양양조 -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사회=정충신 문화부장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