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93세인 윤정선(왼쪽 첫번째) 할머니가 지난 2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1리 황토현마을 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물동이를 일 때 쓰는 똬리를 만들고 있다. 용인 =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선기(83) 할아버지가 지난 2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1리 마을회관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목화 씨아와 솟대를 앞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용인 = 정하종기자
“6·25 때 문경 너머 상주로 피란가는데 내가 이 목화 씨아 만드는 재주밖에 없었어. 그래서 마을의 어떤 사람한테 하나 만들어줬더니 밥 실컷 얻어먹고 대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지. 이 집 저 집에서 오라고 해서 동짓달 초순에서 정월 초순까지 그 동네에 눌러앉아 씨아만 만들었어. 고려시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서 원래 씨아 만드는 사람은 문씨밖에 없어. 그런데 난 이씨인데도 동네 사람들이 문씨라고 불렀어. 원삼면 전체에 씨아를 만드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내가 국민핵교도 모르고 언문 뒤풀이도 모르지만 일만 열심히 하면 배고플 게 없어.”
지난 26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1리 황토현마을 마을회관. 어르신들이 농한기에 만든 짚공예 작품들이 벽에 진열된 가운데 이선기(83) 할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목화 씨아를 앞에 놓고 손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이게 굴피나무로 만들어야 돼. 참나무는 안돼. 굴피나무를 깎아 다듬고 사포질을 한 다음에 이 뾰족한 환으로 홈을 잘 파야 빽빽거리지 않고 씨아가 잘 돌아가. 자, 잘 보라고. 이렇게 목화씨를 이 사이에 집어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솜은 앞으로 떨어지고 씨는 뒤로 빠지게 되는 거여.” 이 할아버지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씨아의 원리를 설명했다. 옆에 있던 최을수(76) 할아버지는 “저 어른은 눈썰미가 좋아 한번 봤다 하면 다 만들어내”라고 이 할아버지를 치켜세웠다.
이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았는지 이번에는 솟대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느티나무로 만든 받침대에 구멍을 내고 조릿대(대나무)를 끼워. 그 다음에 느티나무로 새 모양을 깎아 끼우면 솟대가 완성돼. 저거 하나 만드는 데 20분이면 돼. 내가 농업기술센터 체험 행사장에 가서 팔았는데 인기가 좋았어. 학생들이 2000원에도 사가고 좀 큰 거는 3000원에도 사가서 수입 좀 올렸지.”
이 할아버지의 ‘잡담’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집 구경을 한번 하자고 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건강과 관련해 이것저것 물었다. “산에 가면 머루·다래가 없어, 들에 가면 콩·팥이 없어? 밭이고 논이고 하루 죙일 돌아다니면 먹을 게 생기는 거여. 거기다 술 한잔 마시면 몸이 후끈하고 기분 좋아 들에 가서 일을 해도 하나도 안 힘들어. 음식은 좋아하는 것 아무것도 없어. 괴기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이 할아버지는 오전 6시면 일어나 집안에서 몸을 가볍게 푼 다음 자전거를 타고 밭에 나간다. 1시간 정도 일하다 집에 와 아침식사 하고 다시 또 밭에 나간다고 한다. 집에 도착해서도 이 할아버지의 걸쭉한 입담은 계속됐다. “사람이 게으르면 못써. 기운 있을 때까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돼. 아프다고 드러누워 있으면 점점 더 아파.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 없어. 절대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돼.” 커피와 과일을 내온 며느리 이혜숙(43)씨는 “우리 아버님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으세요. 고기는 살찐다고 잘 안드시고 물을 많이 드신다”고 이 할아버지의 건강 비법을 말해줬다. “우리 막내 며느리가 제일 예뻐. 시아버지 반주 하라고 술도 항상 받아놔.”
마을회관에서 새끼로 똬리를 만들고 있던 윤정선(93) 할머니는 황토현마을 최고령자다. 그 나이에도 집 근처 텃밭에서 하루에 3~4시간씩 잡초도 뽑고 거름도 주면서 일을 한다. 농한기에는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짚으로 둥그미, 똬리, 멍석 등을 만들고 화투도 치면서 소일한다고 한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아들 김태건(58)씨는 어머니의 건강 비결에 대해 “김치, 시금치, 상추, 쑥갓 등 텃밭에서 나는 유기농 채소를 많이 드셔서 그런 것 같다. 고기는 몇 점만 먹으면 끝이고 밥은 한 공기 이상 드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할머니는 지금도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오전 4시면 깬다. 김씨는 “어머니는 성격이 순하고 차분하시다. 자손들이 다 먹고 살 만하니까 살림 걱정 없이 편하게 사신다”고 했다. 당과 혈압이 조금 있어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다니는 것 외에는 건강상 문제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용인 =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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