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희망 - 2010 대한민국 리포트>“‘있는 사람’이 욕심내지 않고 사랑 나눠야 공정사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영균(왼쪽) 회장이 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자택에서 부인 김선희씨와 함께 문화일보 창간 19돌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촛불을 켠 채 “문화일보가 항상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달하는 세상의 빛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1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인근 자택에서 만난

원로배우 신영균(82) 전국민영방송협의회 회장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밝은 화색에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1950~1980년대 뭇 여성의 심금을 울렸던

미남 스타의 풍모는 팔십을 넘긴 멋쟁이 노신사에게

변함없이 남아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건강 비결부터 물었더니

“매일 오후 3~4시쯤 헬스클럽에 다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 회장은 요즘 누구보다 행복한

‘아름다운 노년’을 맞고 있다. 인터뷰 스케줄도 바빴다.

이날 점심때는 ‘잡지인이 정한 올해의 인물상’을 받았고

그 전에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는 감사패를 받았다.

10월29일에는 ‘제 47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영화인으로서는 그가 처음 받은

‘자랑스러운 영화인 대상’이었다.


인터뷰 = 정충신 문화부장

신 회장은 “제1회 대종상 남우주연상부터 2008년 공로상까지 숱한 상을 받았지만 영화인들이 뜻을 모아 준 그 상은 제게 ‘가장 아름다운 영화인 대상’으로 영화인으로서 가장 값지고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를 비롯한 온가족이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많이 받고 있어 행복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영화인 신 회장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노년’의 선물을 안겨준 것은, 평생 영화에 대한 열정을 바친 그간의 공로와 더불어 영화인과 영화계에 선사한 그의 변함없는 애정이 큰 몫을 했다.

그는 10월5일 서울 충무로 명보극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보극장(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평생 모은 500억원 상당의 사재를 영화계 및 문화예술계의 공유 재산으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혀 큰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계 스타의 ‘노년의 결단’은 우리 사회 기부문화에 대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신 회장은 “아들이 ‘아버지가 영화인으로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 아니겠느냐’며 먼저 제의해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며 “효자 아들 둔 덕분에 요즘 온 가족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기부 결정에 아들 신언식 한주에이엠씨 회장은 아버지에게 존경을 표시했고, 딸 신혜진 세영 엔터프라이즈 대표는 “멋쟁이 아버지”라며 환영했다. 아내 김선희씨는 “장한 일 하셨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신 회장의 영화인에 대한 애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영화인·연극인 후배 자녀들에게 20년 넘게 틈틈이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신우회’를 조직해 원로 배우들과 3년 전부터 30~50명씩 매달 정기적으로 오찬 모임을 가져왔다.

10월25일 창립식을 치른 대중문화예술인의 사회봉사단체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이사장 최수종)에서 후배들의 권유로 고문을 맡았다.

“이덕화 100인이사회 명예회장이 찾아와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탤런트, 영화배우, 가수, 희극인들이 힘을 합쳐 우리 사회의 어렵고 힘든 곳에 기부, 선행, 봉사 문화의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는 일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면서 참여를 요청해왔어요. 국민들로부터 인기와 사랑을 받아온 입장에서 이제는 사랑을 돌려주는 역할을 하자는 취지에서 고문을 맡게 됐습니다.”

신 회장은 “돈이 많이 있어야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고, 돈이 없다고 해서 기부 못하는 것도 아니다”며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먹고 사는 배우들이야말로 꼭 돈만 가져가기보다 먹을 것 좀 싸가지고 우리사회 어두운 곳을 찾아가서 그들의 손 한번 잡아주고 희망을 전해주며 격려해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재 기탁이 기부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대한민국은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가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이웃이 많습니다. 미국의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같은 거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해 거액의 기부로 미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기업 기부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개인 기부는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기업인들 중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행위를 아직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같은 잘못된 문화가 사라지고 이제는 기부문화가 온사회로 확산돼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사재 기탁을 생각하셨는지요.

“칠순·팔순 잔치를 가족들과 조촐히 치렀어요. 팬들이 ‘신영균은 너무 가정적이라서 배우로서 재미가 없다’고들 하는데 2006년 아내와의 결혼 50주년 금혼식만큼은 영화계 인사들은 물론, 정·재계 지인들을 초대해 멋진 자리를 만들려고 했지요. 금혼식을 앞두고 이렇게 돈을 없애는 것보다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더니 아내가 흔쾌히 동의했어요. 그래서 금혼식 비용 1억원을 모두 신문사에 기부해 고아원 등을 돕는 데 썼지요. 이를 계기로 아이티 지진때는 10만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좋은 일을 해보니 제 스스로 행복해져 재산의 사회환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기부한 명보극장과 신영영화박물관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영화계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사진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이사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5일 이사회 준비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사회는 앞으로 영화계 인재 육성과 연극 단체 등의 지원 사업을 펼치게 될 것입니다.”

신 회장은 “현재 영화계 후배들은 열심히 잘하고 있고 능력도 뛰어나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 시장이 너무 좁아 영화계를 살릴 길은 좀더 적극적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지요. 영화계에는 그만큼 인재가 중요합니다. 앞으로 명보극장에서 나오는 수입을 인재 발굴과 육성 사업에 쏟아부을 것입니다. 장학사업도 하고 어려운 영화인·연극인 등 연기자들과 뜻있는 연극단체들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올해 대종상에서 원로배우인 윤정희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소감은.

“영화계는 나이 들면 뒷방 노인네 신세로 물러나서 은퇴만 생각하게 되는데 윤정희씨가 당당하게 주연상을 받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나이 많은 배우도 실망 말고 도전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연기를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으신지요.

“죽 대중문화계에 몸을 담았지만 연기를 쉰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배우에게 ‘은퇴’란 단어는 있을 수 없지요. 제 마음속에 항상 좋은 작품만 있으면 할 각오가 돼 있어요.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 한편 정도를 제주 바다에서 찍어보고 죽고 싶어요.”

왜 일찌감치 은퇴를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당시 영화에 대한 검열이 너무 심했어요. 영화인들이 제 뜻대로 제작을 못하니 관객들이 영화에 매력을 못느끼게 되고 제작사들은 작품 수를 줄이고 시나리오도 재미가 없어졌지요. 저는 좋은 작품을 골라서 출연하는 성격인데 재미가 없어져서 그만두게 됐어요.”

전 재산의 40%를 선뜻 기부한 자산가인 신 회장에게 돈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선배 배우들 중에 한창 잘 벌 적에 낭비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지요. 낭비해서는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절대 부자가 될 수가 없지요. 대신 잘 벌어서 꼭 쓸 데에 잘 써야 해요. 저는 절약하는 마음을 항상 갖고 평생 그렇게 살아왔어요. 저보고 짜다고 하는데 전 절약형이지 짠 사람이 아니에요.”

신 회장은 “요즘 영화계는 영화인협회와 영화인회의, 진보와 보수, 노년층과 젊은층으로 서로 갈라져 거리가 멀어진 감이 있다”면서 “영화인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선·후배가 서로 찾고 교류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신 회장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는 사람이 욕심내지 않는 사회가 공정사회”라며 “사랑을 나눠야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인· 영화인, 치과의사에 한국예술인총연합회 회장, 김영삼정부 시절 국회의원으로 외도도 했던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다”며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