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세상보기>국제정치학 ‘知的 植民’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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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와 부엉이 / 강성학 지음/박영사

그의 연구실 출입문엔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명문들이 언제나 붙어 있었습니다. 영문학자가 아닌 정치학자의 연구실에서 만나는 문학가의 글은 묘한 느낌을 줬습니다. 20여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암암히 떠오릅니다. 당시 40대 소장 학자였던 강성학(국제정치학) 고려대 교수는 사회 과학을 하겠다는 제자들에게 인문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를 권하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강조했습니다.

이제 국제정치학계의 원로가 된 강 교수는 저서 ‘무지개와 부엉이’의 서문에서 자신의 연구 지향점을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국제정치를 연구할 때 그 자체의 현상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나 보편적인 정치 철학과 연관시켜 분석했고, 거기에 ‘향기로운 문학적 향수’를 뿌리고자 했습니다.

국제정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 선집인 ‘무지개와 부엉이’는 역사, 철학, 그리고 문학을 포용하는 사회과학책이 얼마나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이 책은 정치권력의 본질과 속성, 국제정치학의 역사, 국제정치이론과 정치지도자의 역할, 국제기구와 외교정책, 21세기 정치 및 군사전략, 한국 국제정치학의 세계화 등의 주제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장정판 책은 서문을 포함하면 1000여쪽에 달합니다. 강 교수가 서문에 언급한 대로 이런 류의 책을 방대한 분량으로 출간한 출판사의 용기는 상찬할 만합니다. 상업적으론 모험에 가까운 것이지만, 한국 출판 문화의 소중한 영토를 지켜 내는 일인 까닭입니다.

책을 찬찬히 읽으며 특별히 주목한 곳은 ‘안보외교정책과 지도자의 조건’(16장)이었습니다. 한반도 북쪽의 ‘전체주의 왕조’를 통제하며 미국과 중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나날이 외교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이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해 새로운 경제질서를 창출하려는 시점이기 때문이겠지요. G20 정상회의는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외교적 실천 능력을 발휘하는 마당입니다. 여기서 어떤 성과를 이뤄 내는가에 따라 한국 지도자의 능력도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 책은 지도자의 안보외교적 실천 능력으로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낡고 시대착오적인 국제 질서를 타파하고 새 질서를 창조하는 혁명가의 길이요, 또 하나는 불필요한 전쟁을 방지하면서 자국의 외교정책을 국제적 변화에 분별력 있게 적응시키는 현상관리자의 길입니다. 현명한 지도자는 두 개의 길을 적절하게 선택하거나 조화시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한국 국제정치학이 진일보하겠다는 무지개를 꿈꾸면서도 미국 국제정치학을 흉내 내는 실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책의 첫 장을 이루고 있는 ‘한국 국제정치학의 세계화’에서 강 교수는 특유의 통렬한 어조로 우리 국제정치학이 아직도 미국의 실증주의, 정책과학주의에 함몰돼 있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이 창조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시대에 학자들이 실증주의적인 이론화에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입니다. 또 정책과학주의라는 미명 아래 현실 정치와 너무 가깝게 있을 때 정치학이 자칫 권력의 체제 유지에 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이 미국의 실증, 정책과학주의를 탈피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미국 유학파여서입니다. 자신의 스승, 동료들과 호흡을 함께하며 영어로 논문을 써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진정성을 갖는 것은, 논지가 분명할뿐더러 강 교수 스스로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 유학한 학자인 까닭입니다. 강 교수는 우리 국제정치학이 미국학계에 의존하는 지방성을 탈피해 자신의 특기로 세계화를 이루려면 동아시아의 국제사를 심도 있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미국학자들에의 단순한 모방에서 탈피하여 이제껏 경시해 왔던 아주 길고 광범위하며 심오한 동아시아의 국제사로 되돌아와야 한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