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기자의 무대 돋보기>“참 징한 아버지” 물기 어린 웃음이…

2010 자유젊은연극에 극단 골목길의 ‘경숙이, 경숙 아버지’(20일∼12월4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사진)가 초청됐습니다. 자유젊은연극은 토월정통연극과 함께 예술의전당의 대표적인 명품 연극 레퍼토리이지요. 토월정통연극이 에우리피데스부터 셰익스피어, 체호프, 브레히트, 아서 밀러 등 묵직한 감동의 서구 고전이 단골 메뉴라면, 자유젊은연극은 국내 젊은 연극인들의 자유로운 창작과 도발적 실험이 돋보입니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극단 골목길의 ‘골목대장’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2006년 초연, ‘올해의 예술상’ ‘대산문학상 희곡상’ ‘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BEST 3’ 등 그해 연극계 주요 상을 휩쓴 문제작입니다. 이듬해 조재현, 박철민, 장영남씨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스타들이 대거 가세해 롱런 앙코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2009년에는 정보석, 홍충민, 심은경씨 주연으로 설날특집 4부작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작품은 경숙이와 경숙이 아버지, 두 사람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경숙이는 현재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고, 아버지는 현재의 결과를 낳은 과거의 부채이고 미래의 짐이지요. 식민지와 동족상잔의 비극이 주요 배경이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습니다. 어이없이 몰염치한 우화적 서사로 몰아치면서 오히려 물기 어린 웃음과 부조리한 공감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의 현대사를 ‘뽕짝’에 실어 악극처럼 표현, 묘한 흥마저 불러일으킵니다.

자식을 떼놓고 혼자 피란을 가는 자기밖에 모르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만들었지요.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핏줄인 아들입니다. 딸은 덤이고 짐일 뿐입니다. 풍각쟁이 한량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뒤 한참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 집문서와 부인, 딸을 외간 남자에게 넘기고 떠납니다.

또 갑자기 첩을 데리고 들어와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부부와 외간 남자와 첩, 그리고 딸이 한집안에서 사는 기묘한 상황이 마치 뒤죽박죽 엉망이 된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는 듯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숙이는 낮에는 공장, 밤에는 학교에 다니며 학사모를 쓰고 건강한 소시민과 결혼,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을 낳습니다. 그토록 싫은, 하지만 눈물겹게 사랑하는.

총알이 빗발치고 욕설과 폭력, 억지가 난무하는 처절한 스토리지만 근저에 흐르는 따듯한 웃음과 사랑을 절묘하게 끄집어내 결코 우울하게 만들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지지리도 가난한 연극을 즐겁고 따뜻하게 만드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는 박근형씨는 궤짝 몇 개에 장구, 찌그러진 세숫대야와 양은상과 젓가락만 갖고 구수한 뽕짝에 어설픈 어깻짓, 과장된 신파극 몸짓을 실어 웃음으로 멋지게 버무렸습니다. 고수희, 주인영, 김영필씨 등 골목길 초연멤버들이 새롭게 빚어낼 감동이 기대됩니다. 02-580-1300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