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송제혁(오른쪽)·정동빈 할아버지가 지난 7일 오전 강원 화천군 상서면 파포리 마을회관에서 ‘화천 산천어축제’에 쓰이는 산천어 등(燈)을 만들고 있다. 화천 = 심만수기자 panfocus@munhwa.com
지난 7일 찾아간 강원 화천군 상서면 파포리 양지마을. 한파가 몰아닥친 이날 노인정을 겸한 마을회관에서는 두 어르신이 ‘산천어 등(燈)’을 만들고 있었다. 세계적인 겨울철 축제로 자리 잡은 화천 산천어축제가 내년 1월에 열리면 군청 거리 곳곳을 환하게 밝혀줄 등이다. 송제혁(86), 정동빈(83) 할아버지는 한지로 만든 녹색 산천어에 검정 물감을 찍은 붓으로 아가미와 지느러미 등을 정성스럽게 그려 넣었다. 두 어르신 뒤쪽 안방 벽에 걸린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액자가 눈에 띄었다.
산천어 등 제작은 ‘장인 정신’이 발휘되는 길고 정교한 작업을 요한다. 먼저 철사로 산천어 모양을 만들어 한지를 여러 겹 붙인 다음 노랑, 주황색 등의 색칠을 한다. 붓으로 물고기 비늘 등을 그린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눈에 젖지 않도록 방수액을 발라 말린다. 특히 산천어 안에 집어넣는 등불 빛이 잘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산천어 배 부분에 얇은 한지를 발라 색깔을 엷게 입히는 작업은 고도의 정교함을 요한다.
산천어 축제 때 사용되는 수만개의 등 중 이 마을에서는 1000개 정도를 만든다. 마을 노인회 회원 11명이 3월부터 11월까지 꼬박 9개월간 작업을 해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화천군 노인 공공근로 사업으로 진행되며, 하루 종일 산천어 등을 만들면 일당 3만∼4만원 정도가 주어진다. 송, 정 할아버지는 이날 마지막 주문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눈 보호용 노란색 안경을 쓴 송 할아버지는 “산천어 등을 만드느라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금방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간다”고 말했다. 정 할아버지도 “이 산천어 등이 보기엔 예쁘지만 손이 참 많이 가는 일”이라고 했다.
일을 마치고 각자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한 두 어르신은 오후 1시30분쯤 회관 옆에 있는 게이트볼장에 모였다. 송, 정 할아버지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20여명의 마을 어르신들과 어울려 게이트볼 게임을 즐겼다. 연습과 게임은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송 할아버지는 2000년부터 게이트볼을 배워 지금은 주로 장타를 많이 치는 9번이나 10번을 달고 게임을 하는 ‘프로급’선수다. 송 할아버지는 게이트볼을 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20분 정도 테니스까지 칠 정도로 운동에 열중하는 스타일이다.
송 할아버지 같은 실력 좋은 선수들이 많아 파포리 노인회 게이트볼팀은 군내 열리는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만 해도 화천군수기대회와 게이트볼연합회 대회, 노인회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상금만 모두 170만원을 받았다. 지난 2004년에는 제주에서 열린 게이트볼연합회 전국대회에 강원도 대표로 출전해 3등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송 할아버지는 “우리 팀 실력이 소문이 많이 나서 그런지 다들 우리를 제일 무서워해”라고 말하며 ‘흐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송 할아버지가 운동에 깊게 빠진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002년 허리 디스크 수술로 다리가 불편해지자 재활 치료 차원에서 게이트볼을 더욱 열심히 쳤다.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 몸을 움직이니까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다”고 했다. 송 할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았음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운동과 음식에 있었다.
송 할아버지는 오후 10~11시쯤 잠을 청해 오전 5시면 일어난다. 먼저 집 청소를 한 다음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한다. 7시쯤 아침 식사를 한 뒤 농번기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농한기에는 산천어 등 제작이나 게이트볼 게임을 한다. 식사는 채식 위주로 하고 고기는 드문드문 먹는다고 한다.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은 시금치, 배추, 시래기 호박나물, 무 등이다. 술은 좋아하는데 수술한 뒤로는 거의 안 마시고 게이트볼 치고 나서 한두 잔 마시는 정도다. 담배는 게이트볼을 배우면서 끊었다.
정 할아버지도 운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다. 지난 2000년 뇌경색으로 오른쪽 부분에 마비가 왔는데 이후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고 운동을 열심히 해 좋아졌다고 한다. 정 할아버지는 “오후에 게이트볼을 치고 마을회관에 설치된 러닝머신, 트위스트머신 등을 하면 4시간이 후딱 간다”고 했다. 식사는 잘하고 텃밭에서 나는 야채로 만든 반찬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정 할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손이 떨리기 때문에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화천 =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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