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중대기로’> 버티는 무바라크 “외부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

“이집트인들은 언제나 군을 국민의 마지막 보호자로 여겨왔다. 국민이 군을 같은 편으로 느끼지 않게 된다면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이집트 야권인사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0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앞서 트위터를 통해 “군이 이집트를 구하기 위해 즉각 나서라”고 요구하며 군의 선택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듯했던 입장에서 미묘하게 한발 물러선 발언인 셈이다. 영국 BBC 방송 특파원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서 대통령궁으로 몰려가자는 구호가 나오면서, 시위사태 속에서도 중립을 유지해온 군이 이전보다 훨씬 긴장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전 세계의 시선은 다시 이집트 군부에 집중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즉각 퇴진요구를 거부하고 군부 핵심인사 출신인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실질적 권력자가 됨으로써 군의 선택이 다시 한 번 향후 이집트 정국의 핵심적인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군부는 무바라크의 성명에 공식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성명발표 수 시간 전 카이로 방어사령관인 하산 알 로에이니가 타흐리르 광장에 직접 나타나 “여러분의 모든 요구가 오늘 이뤄질 것이며 군과 국민은 하나”라고 말해, 시위 참가자들은 물론 전 세계 언론들은 이집트 군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앞서 군 대변인은 국영TV 성명을 통해 “이집트 군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왔으며 국민의 합법적인 요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10일 개최된 군최고위원회에서 이같은 입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국영TV는 이날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군최고위원회에서 20여명의 장성들이 굳은 얼굴로 회의를 갖는 모습이 담긴 화면을 방송하기도 했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BBC 등은 군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무바라크를 배제하고 본격적으로 이번 사태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일제히 분석했다.

“시위를 무력진압하지 않겠다”면서 지금까지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온 군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무바라크와는 결별하되 군 실권자인 술레이만 체제에 동조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변수는 쿠데타 가능성이다. 군은 10일 성명을 발표하면서 ‘코뮈니케1’로 명명해 관심을 끌었다. ‘코뮈니케’란 문자 그대로 ‘성명’이란 뜻을 갖고 있지만, 지난 1971년 터키군이 정변 이후 ‘코뮈니케’란 용어를 사용한 데서 보듯 쿠데타와 적지 않은 연관성을 나타내왔기 때문이다. 카이로 소재 알 아흐람 정치·전략센터의 나빌 아브델 파타 연구원은 “군 통수권자인 무바라크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군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는 것은 군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미국 타임지는 군부가 지난 수십년간 군사정권체제에서 방대한 군산복합체를 형성하며 경제력을 장악해왔다는 점에서, 기존 권력을 모두 포기하고 민주체제에 힘을 실어주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