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사살 이후>美-파키스탄 ‘빈 라덴 갈등’ 최악

미국과 파키스탄 간의 관계가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특히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미국과 야당의 공격으로 2008년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자르다리 대통령은 8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오사마 빈 라덴 비호세력에 대한 조사를 정식으로 요구받은 데다가, 야당 지도자들부터 미군의 기습작전으로 국위를 떨어뜨린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요구를 받았다. 빠르면 올해 상반기 중 성사될 것으로 전망됐던 오바마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도 현재로선 매우 불투명해 미국과의 밀접한 협력관계를 국내외에 과시하려 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8일 현지언론 지오TV, ‘더 돈(새벽)’ 등은 초드리 니사르 알리, 임란 칸, 샤 메무드 쿠세시 등 의회 야당지도자들이 일제히 자르다리 대통령과 유수프 라자 질라니 총리의 즉각적인 사임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정부가 미군특수부대의 영공침입을 막지 못했으며, 빈 라덴 등 알카에다 비호의혹으로 국가이미지를 추락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질라니 총리는 9일 초드리 등과 만나 갈등해소를 시도할 예정이지만, 정치적 공세를 과연 무마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자르다리 대통령도 이날 의회에서 관련된 언급을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과 파키스탄은 빈 라덴의 다섯번째 부인 아말 아메드 압둘 파타와 자녀 등에 대한 신병을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아말 등은 현재 라왈핀디의 군병원에서 총상 치료 중이다.

미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 아보타바드 저택에서 빈 라덴과 약 5년간 생활했던 아말 등 부인 3명의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빈 라덴과 가족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와 아보타바드에 체류하는 과정에 파키스탄 군 또는 정보기관이 개입한 정황과 알카에다의 테러계획에 관한 정보를 이들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당초 미 특수부대는 빈 라덴 가족을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로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헬기 한 대가 기체 이상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자리부족으로 포기했었다.

빈 라덴이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 숨어들기 전에 파키스탄 남부의 시골 마을 차크 샤 무하마드에서도 2년 반 동안 살았다는 아말의 추가 증언이 나오면서 파키스탄 내 비호세력 존재에 대한 의혹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아말의 증언이 확실하다면,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머무른 기간은 총 7년 반으로 늘어나게 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6일 아말이 지난 2002년 고국인 예멘에 머물러 있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알마잘라’지와의 인터뷰에서 “9·11테러 후 미국의 아프간 공습이 시작되면서 빈 라덴과 동굴에 숨어 있다가 부족민들의 도움으로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정부관리들에게 인도됐고 그들의 도움으로 비행기 편으로 고국 예멘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그는 “남편에게 다시 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신의 뜻대로 하겠다”고 대답했으며, 몇 년 후 빈 라덴의 부름을 받고 파키스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후사인 하카니 미국주재 파키스탄 대사는 8일 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조사가 완료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과의 적극 공조 및 정보공유를 약속했다. 그는 “만일 누군가의 공모가 밝혀진다면 그것에 대해 관용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