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을 극복하는 사람들>“생약·심신이완요법 통해 불안·우울 등 2차적문제 해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성재 고려대 의대 통합의학과 교수가 지난 14일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에서 암 환자들을 위한 통합의학 치료 중 하나인 미술치료를 지도하고 있다. 양평 =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통합의학 치료는 생약과 식이·영양요법, 심신이완요법 등을 통해 암 치료를 보조하면서 암 환자들의 불안, 우울 등 2차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유효합니다.”

이성재(59) 고려대 의대 안암병원 통합의학과 교수는 지난 1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보완대체요법에 의한 통합의학적 치료가 암 환자의 정신적, 심적, 사회적 건강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교수는 “통합의학은 미국·유럽 등에서는 이미 활발히 시행돼 좋은 호응을 얻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분야”라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지난 2월 개소한 안암병원 통합의학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통합의학은 현대의학을 기초로 하면서 한의학은 물론, 민간의 보완대체요법 가운데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요법과 숲 치유 프로그램 등 비약물적 요법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 교수는 “국내 통합의학이 아직 초보 단계지만 양·한방 협진보다 더 큰 개념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특히 환자 중심의 의료체계를 만드는 데 통합의학이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의학센터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파마를 한 듯 헝클어진 흰 머리칼이 ‘우주소년 아톰’ 만화영화에 나오는 백발의 과학자를 연상시켰다. 외모만큼이나 그의 경력도 범상치 않다. 그는 1978년 한국을 떠나 독일 훔볼트대에서 학사와 소아심장 분야 석사를 마치고 마르부르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독일 의학계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던 환자 중심의 통합의학적 치료에 큰 감명을 받은 그는 1997년 귀국해 통합의학을 알리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가천의대 소아심장과 및 통합의학클리닉 교수를 거쳐 2006년 고려대로 옮겼다. 현재 대한보완통합의학회 이사장과 회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최근 ‘숲 치유 프로그램’이 암 환자들의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1주일에 수차례 경기 양평군의 산음자연휴양림을 오갔다. 통합의학 선구자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통합의학은 무엇이고,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나.

“통합의학은 현대의학을 기초로 한의학과 보완대체요법의 장점을 통합한 의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에서는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 존스홉킨스 등 주요 대학에 다 통합의학센터가 있다. 암 치료로 유명한 MD 앤더슨과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링 암센터(MSKCC)에도 통합의학센터가 있다. 통합의학은 독일에서 1970년대 처음 시작했고 미국에서 1990년대부터 학문적으로 체계화됐다. 통합의학은 환자를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심적, 사회적, 영적 건강까지도 같이 챙겨줘야 한다는 인식 전환에서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는 건강의 개념이기도 하다.”

―암 환자에게 통합의학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암 환자들은 모두 불안, 우울, 수면장애, 통증 등 ‘2차적 문제(secondary problem)’를 갖고 있다. 암 환자 가족도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통합의학은 암 환자들의 이런 2차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불안, 수면장애 등을 완화하기 위해 스트레스 관리 및 심신이완요법 등을 실시한다. 또 수술을 ‘메인’으로 하면서 보조요법으로 통증 등을 완화하는 면역증강요법 등을 해준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면역계에도 영향을 준다. 암 환자가 정신적으로 어려우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면역증강요법에는 약물적, 비약물적 요법이 있다.”

―고려대 통합의학센터에서는 암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하고 있나.

“우리는 심신이완을 위한 ‘스마트(SMART·stress management and relaxation technics)’ 프로그램과 숲 치유 프로그램인 ‘HIF(Healing In Forest)’를 하고 있다. 스마트는 호흡요법을 하거나 의료 명상, 근육이완요법 등을 하는 것이다. 의료 명상은 교육학이나 심리학 전공자들의 지도를 받아서 한다. 심박동 수와 스트레스 호르몬을 떨어뜨리는 명상을 하는 것이다. 외국 유수기관에서는 다 하고 있다. HIF는 암 환자를 숲에 데려가 불안, 스트레스, 공포, 수면장애, 통증을 관리해준다. 반응이 굉장히 좋다.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를 도시군과 숲군으로 나눠 면역세포인 ‘자연살균(Natural Killer·NK)세포’가 얼마나 증가하고 활동성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또 환자 삶의 질 향상이 얼마나 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아토피와 천식 환자들이 숲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통합의학 수준은.

“초보적인 단계다. 독일에 20년 있으면서 통합의학이 참 좋아 7년 전에 대한보완통합의학회를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의사들이 아주 냉담했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지금은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41개 의과대학 중 35개가 통합의학교육을 필수학점 이수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교육에 비해 임상은 늦어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임상이 늦는 것은 제도적으로 의료수가 문제도 있고 의사·한의사 역할이 엄격하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양·한방 협진보다 큰 개념으로 통합의학이 발전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 중심으로 의료가 가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 수요에 맞는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식물에서 추출한 한약 같은 것도 효과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어야 한다.”

―의료 선진국은 통합의학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에 보완대체요법센터(NCCAM)가 있다. 여기서 1년에 연구비로 2000억원 이상을 쓴다. 한의학에 대한 연구와 식물 추출 의약품 연구,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연구, 스트레스 이완 요법에 대한 연구, 수기요법(근골격계의 균형을 잡아주면서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의학) 연구, 에너지 메디신(에너지를 활용한 보완대체요법) 등 200여 가지가 있다. 유럽연합(EU)에도 ‘B7 프로젝트’가 있어서 식물 추출 의약품 등 보완대체요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국가적 단체가 없다.”

―통합의학 연구 과제는.

“통합의학은 보완대체요법 중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것만 한다. 그러려면 연구를 서포트하고 효과를 검증하는 데 제도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 현재 심신이완요법 등 다양한 요법을 해도 건강보험 수가를 받기가 제도적으로 어렵다. 통합의학 발전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통합의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 있을 때 의사들이 통합의학을 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환자에게 처음에는 약을 안 쓰고 치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엔 쓰더라도 부작용이 적고 장기간 써도 좋은 식물추출 의약품을 처방한다. 그것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화학약품을 처방한다. 만성질환 환자를 의료보험으로 숲 치유 프로그램에 보내 재활을 돕는 것도 봤다. 내 전공인 심장 부정맥 시술을 보급하려고 1997년 국내에 들어왔는데 2차적인 사명으로 국내에 통합의학을 보급해야겠다 해서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자기 의학만을 고집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환자 중심의 의료를 구축해야 한다. 한의학 같은 우리 장점을 잘 살려 세계적 경쟁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또 심신요법 같은 것은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함께할 수 있다. 이게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통 민간요법이 발전해 있는데, 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과학화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이 같은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

―암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암의 진단이나 치료 과정은 주류인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한의학에 장점이 있다면 한의학적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암 환자로서 한계를 느꼈을 때는 보완통합의학적인 요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암 치료 자체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2차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암 환자가 어디든 매달리고 싶어하는 것을 악용하는 상업적 비의료인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검증되지 않은 것을 적용해 암 환자를 상술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