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을 극복하는 사람들>“癌종양 미세환경 상호작용 효과적으로 막는 게 과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호영 서울대 약대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관악구 관악로 약대 건물 3층 ‘암화 및 항암제 내성 연구소’에서 항암제의 암세포에 대한 치료 효과를 보여 주는 단백질 분석용 X-레이(웨스턴 블라팅)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임정현기자 theos@munhwa.com

“기존 항암제든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 항암 치료제든 앞으로 항암 연구 과제는 암세포와 암세포의 성장을 돕는 암 주변 환경(종양 미세 환경)의 상호작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항암제에 대한 내성과 암의 재발, 진행을 막자는 것입니다.” ‘항암 기초연구’ 분야 권위자인 이호영(49) 서울대 약학대 약학과 교수는 지난 5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항암제 연구의 향후 과제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일단 암이 발병하면 수술과 항암 화학요법 등을 통해 제거한 다음 재발을 막는 2차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며 “종양 미세 환경이 암 재발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른 장기로 전이된 종양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 주제”라고 덧붙였다.

항암제는 합성 화합물이나 식물에서 추출한 항암물질을 암 환자에게 투여해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제다. 항암제로 암세포 내의 유전자(DNA)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가 작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DNA 유사체를 집어넣어 DNA의 합성을 막는 게 기본 원리다.

합성을 막으면 암세포가 세포 분열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죽여 구토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 단점이 있다. 암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종양 단백질에 항체를 만들어 암세포를 파괴하는 게 표적 항암제다. 표적 항암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암세포가 재발 또는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게 항암 연구의 절박한 과제다.

이 교수는 지난 3월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 종신교수직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귀국해 항암 연구에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항암 기초연구와 임상시험을 연계하는 ‘중개연구(translation research)’ 분야가 전공인 이 교수는 서울대에서 제자 양성은 물론, 암과 다른 질병과의 관계 등 연구 분야를 넓히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화여대 약대에 입학해 지난 1992년 약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5년 텍사스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고, 조교수 시절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지원금을 6개월 동안 3번 연속 받기도 했다. 2009년 종신교수직을 받았다.

그는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에 ‘올인’했다. 이 교수의 연구 경력을 높이 평가한 서울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그는 고심 끝에 승낙했다.

그에게 ‘이제 제자들도 많은데 밤늦게까지 연구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자 “제가 몇 시까지 연구하는지 조교에게 한번 물어보세요”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자리에서건 연구에 매진하는 이 교수 같은 연구자들이 있기에 암 환자들도 완치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암 중개연구는 무엇인가.

“연구실에서 작은 박테리아부터 개, 고양이까지 동물 모델을 가지고 가설을 세워 연구하는 것을 기초연구라고 한다. 메디컬 닥터는 환자의 치료 반응을 보고 연구한다. 이 기초연구와 임상연구에 ‘갭(gap)’이 있다. 이를 연결해 주는 게 중개연구다. 최근 중개연구 분야는 연구 교수와 의사, 통계학자, 병리학자, 약제학자가 모두 모여 팀 프로젝트를 많이 한다. 어떤 암세포에 어떤 단백질이 많고 어떤 치료제가 적합한지 이런 것을 실험실에서 연구하면 중개연구는 이에 해당하는 환자에게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폐암과 두경부암 중개연구를 담당했다. 담배 중 어떤 인자가 폐암에 걸리게 하는지를 연구했다.”

-항암제는 어떤 원리로 암을 치료하는가.

“항암 화학요법에는 알킬화제, 식물성 알칼로이드, 대사 길항제, 항산화제, 항생제 등의 종류가 있다. 합성 화합물 또는 식물에서 뽑아낸다. 항암제는 암세포가 정상세포보다 더 빨리 자라니까 더 많이 죽일 것이라는 게 기본 원리다. 유전자 정보가 DNA에 들어 있는데 암세포 성장을 막기 위해서는 암세포 안의 DNA 합성을 못하게 해야 한다. DNA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인 ‘폴리메라제’의 작용을 못하게 하거나, 좀 다르게 생긴 DNA 유사체를 넣어 DNA 합성을 막는다. 암세포가 세포 분열을 못하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이게 정통적으로 써 온 치료법이다. 이것으로 치료 효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어떤 특정한 종양 단백질만 타깃으로 해 치료하는 표적 항암제가 나온 것이다.”

-표적 항암제는 암세포에 어떻게 작용하나.

“암세포 표면에는 여러 단백질이 있는데 종양에서 많이 발현되는 단백질을 ‘수용체(recepter)’라고 한다. 암세포 밖에는 다양한 암세포 ‘성장 인자(growth factor)’가 있다. 암세포 자체가 이 성장 인자를 만들 수도 있고 혈액 순환을 통해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게 올 수도 있다. 암세포 주변의 ‘종양 미세 환경’이 성장 인자를 활성화시킨다. 그러면 이 성장 인자가 암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달라붙어 암세포가 성장하도록 ‘시그널(신호)’을 보낸다. 이게 암 성장의 메커니즘이다. 표적 항암제는 이 수용체에 항체를 만들어 암세포 성장 인자가 시그널을 보내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암도 자연히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표적 치료제는 특정 암 발병과 관련된 단백질의 성장을 막는다. 이 단백질을 ‘바이오마커(종양 표지자)’라고 하는데 암과 관련된 단백질은 여러 개가 있기 때문에 여러 개의 표적 항암제를 섞어서 쓰는 복합치료(combination therapy)를 많이 한다.”

-표적 항암제의 한계는 무엇인가.

“암은 신체의 총체적 질환(systematic disease)이다. 암과 암 주변의 종양 미세 환경의 상호작용을 효과적으로 막자는 게 표적 치료제의 개념이다. 하지만 암 성장의 중간 단계 세포가 남아 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 있다. 이 암세포가 살아나 재발이나 전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재발이나 전이를 막는 것을 2차 예방이라고 한다. 앞으로 종양 미세 환경 세포와 암세포의 상호작용을 차단해 암의 내성과 재발, 진행을 확실하게 막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종양 단백질을 한꺼번에 막아야 한다. 기존 항암제와 표적 치료제, 두 개 이상의 표적 치료제를 섞어서 쓰는 이유다.”

-현대의학에서 치료가 힘든 4기 암 및 전이·재발 암에 대해 항암제를 통해 근치(根治)할 수 있나.

“현재로서 근치는 힘들다. 암 사이즈가 더 커지지 않게 하는 치료법을 개발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암은 면역세포도 이겨야 하고 새로운 환경을 이겨 내야 한다. 성장이 아닌 ‘서바이벌’인 셈이다. 따라서 기존 암과 생존 및 성장 메커니즘이 다르다. 재발과 전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명상과 식이요법 등을 병행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동물 실험을 해 보면 밀집 공간에 넣거나 먹이를 줬다 뺏으면서 약을 올리는 경우 암이 더 빨리 자라고 재발도 잘 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항암 연구 계기와 국내로 돌아온 이유는.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게 암을 연구한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내가 하는 연구가 환자에게 바로 연결되니까 더욱 소명감을 갖게 됐다. 미국에서는 연구 기반이 다 마련됐고 주변의 존경도 받았지만 내 전공 분야만 해야 했다. 암은 다른 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교수들이 자기 학생을 키우는 게 부럽기도 했다. 미국에서 함께했던 아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도 계기가 됐다. 전이된 암의 유전자 발현에 대한 연구와 5년짜리 프로젝트인 ‘폐암화 기전과 억제 방안’ 연구도 하고 있다. MD 앤더슨과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암 환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먼저 조기 진단과 식이요법, 운동 등을 통해 암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암이 발견되면 ‘마인드 컨트롤’이 정말 중요하다. 포기하지 말고 암이 내 몸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운동과 명상, 식이요법 등을 하면서 암이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암 극복에 대한 의지를 갖고 이를 잘 실천하면 수명을 많이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