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추석특집-다문화 며느리가 말한다>“3년까진 인내… 5년 되니 여유… 7년 지나니 나도 한국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남 산청군으로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들이 산청읍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좌담회를 한 뒤 아이들과 함께 사랑의 하트 모양을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알미다 피보비스(36·필리핀), 트루옹 티나(25·베트남), 에이비 세레나스(35·필리핀), 보토 쿠엔(26·베트남), 에어쇼우힝(31·캄보디아), 성기타 다빠 마저니(25·네팔), 크로오치 스레이낫(23·캄보디아)씨. 고라이 가요꼬(44·일본)씨는 집안 일로 사진을 함께 찍지 못했다. 산청 = 임정현기자 theos@munhwa.com

“아래 동서가 늦게 와 혼자 음식 만들 땐 속상해요. 그런데 나중에 와서 ‘행님(형님) 수고했어요. 늦어서 미안해요’라고 말을 하면 금세 마음이 풀려요.”

지난 5일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 8명이 추석을 앞두고 경남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 산청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지리산 자락인 산청에는 다문화가족 175가구가 살고 있다. 결혼 2~11년차인 이들은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준비와 무뚝뚝한 남편 흉보기, 시어머니와의 갈등 등 그동안 겪었던 ‘좌충우돌’식 한국생활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고라이 가요꼬(44·일본·결혼 11년차), 트루옹 티나(25·베트남·7년차), 보토 쿠엔(26·베트남·7년차), 에이비 세레나스(35·필리핀·7년차), 알미다 피보비스(36·필리핀·7년차), 에어쇼우힝(31·캄보디아·5년차), 크로오치 스레이낫(23·캄보디아·6년차), 성기타 다빠 마저니(25·네팔·2년차) 등 8명의 결혼이주여성이 참석했다.

사회자 없이 진행된 이날 좌담회는 자연스럽게 추석 이야기로 시작됐다. “5년 전 시집왔을 때는 시어머니가 음식을 다 만들었는데 1년 뒤부터 제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가족과 친척들이 좋아하는 고기전과 나물, 지짐(전)을 내놓을 생각이지만, 솔직히 맛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에어쇼우힝씨가 운을 떼자, 같은 캄보디아 출신 크로오치씨는 “냄새 나는 생선튀김은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와 새우 튀김을 이만큼 만들 생각”이라며 양팔을 크게 벌리면서 말을 받았고 좌중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알미다씨는 “시집 와서 처음 된장 냄새를 맡고는 깜짝 놀랐지만, 이제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만들어 내면 남편과 시어머니가 ‘맛있다, 맛있다’고 해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한국 결혼생활 7년 만에 한국 아줌마가 다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온 에이비씨는 “추석과 설 때 가족은 물론 친척 수십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국 풍습이 무척 신기했다”며 “처음에는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밥을 먹을까 걱정했는데, 여자들이 힘을 합쳐 밥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찡한 가족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크로오치씨는 “명절에 가족들이 다 모이면 재미있다”며 “특히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38세 시동생이 ‘행수(형수) 행수(형수)’라고 부르며 공손하게 대해 줄 때는 정말 신나고 즐겁다”고 말했다. 트루옹씨도 “명절 때 시동생, 동서, 고모들을 만나 그동안 속상한 것을 털어놓으면 모두 잘 받아줘서 어떨 때는 명절이 기다려지기도 한다”며 “우리 집은 제사가 많은데 친척과 가족들이 음식을 서툴게 만들어 내도 맛있게 잘 먹어 주어 고맙다”고 했다. 크로오치씨는 “손아래 동서가 직장에 다녀 명절 때나 제사 때 혼자서 음식을 만들면 속상하다”며 “처음에는 동서가 늦게 와 심심했는데 나중에 와서 ‘행님(형님) 수고했어요. 미안해요’라고 해서 마음이 풀어졌다”고 했다. 트루옹씨도 “혼자서 명절음식을 만들 수도 있지만 어머니께서 장을 많이 봐 놓으면 손아래 동서에게 전화해 ‘동서야 빨리 온나(와라) 나 혼자 못하겠다’고 하면 금방 뛰어와 돕는다”며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추석 이야기가 고향에 있는 가족 이야기로 옮겨지자, 알미다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남편 가족들이 모여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고향에 두고온 부모와 동생 생각이 나서 힘들 때도 있다”며 “추석 차례를 지낸 뒤 컴퓨터 화상채팅으로 필리핀에 사는 어머니를 만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토씨도 “둥근 보름달을 보면 저절로 고향생각이 난다”며 “다음해에는 베트남 고향에서 추석을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다소 우울해지자, 결혼 11년차로 가장 연장자인 일본 출신 고라이씨가 나섰다. 그는 “너무 물가가 올랐어요. 예전에는 콩나물 1000원어치를 사면 아침에 먹고 저녁에도 먹고 했는데 지금은 아침밖에 못 먹어요”라고 말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트루옹씨는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값이 너무 올라 지금은 닭고기만 주고 있다”고 했다. 고라이씨는 “올해는 친척들하고 평소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선물을 돌릴 생각”이라고 했다.

이들은 한국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의사소통 문제와 음식을 꼽았다. 에이비씨는 “처음에 말을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실수를 많이 해 정말 속이 상했고, 고향음식도 무척 그리워했다”며 “그런데 3년 정도 지나면서 조금 괜찮아졌고, 5년을 넘기면서부터는 즐길 수준이 됐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장님 3년, 벙어리 3년, 귀머거리로 3년’이라는 옛 시집살이 속담이 이제는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말이 된 셈이다.

고라이씨는 “처음 감자조림을 일본식으로 만들어 고춧가루만 뿌려 냈는데 아무도 먹지 않아 난감했었다”며 “3년이 지나니 음식을 제대로 만들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가능해져 편해졌다”고 했다. 트루옹씨는 “베트남은 한국과 언어와 문화가 크게 달라 결혼 3년까지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후 한국말에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면서 7년이 지난 지금은 말도 잘하고 아무것이나 잘 먹는다”고 말했다.

크로오치씨는 “캄보디아에서는 아침을 안 먹는데 한국에서는 시부모에게 아침마다 밥상을 차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처음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아무도 먹지 않았지만 지금은 식구들이 가장 잘 먹는 음식이 제가 끓인 김치찌개”라고 자랑했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중요 관심사였다. 이들은 엄마가 글을 잘 모르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할 것 같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한글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트루옹씨는 “3년, 5년이 지나면 한글을 대충 알 수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안내장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다”며 “특히 여름 소풍을 가는데 소풍준비물이 뭔지도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 얼굴을 붉히며 선생님한테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좋은 학원, 좋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교통이 불편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결혼이민자 지원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에어쇼우힝씨는 “큰딸(4세)이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자주 가는데 병원에서 아이가 아픈 곳을 설명해 주어도 어려운 말이 많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속이 상하다”며 “산청군에서 다문화가족을 위해 병원에 통역을 배치해 주거나 전화하면 24시간 통역해 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기타씨는 “아직 한국 음식이 서툴러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다문화센터 등에서 한식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엄마가 캄보디아 사람이라고 놀리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크로오치씨는 “한국사람이나 외국에서 온 사람이나 피부는 달라도 느끼는 마음은 모두 똑같다”며 “우리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결혼이주여성 등 다문화 가정에 대한 포용력을 점점 넓히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라이씨는 “최근 초등학교에 다문화강사로 나갔는데 학생들이 독도에 대해 질문을 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한 적도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사회가 11년 전에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결혼이민자를 포용하는 분위기가 크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에이비씨는 “앞으로 우리 같은 외국인 며느리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더 많아질 것”이라며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차별없이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접 받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청 = 박영수기자 buntl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