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秦始皇과 흙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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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소설가

중국의 100년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上海), 1000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北京), 3000년 역사를 훑어보려면 시안(西安)을 가보라 한다. 중국을 한 번도 못 가봤다 하면 사람들은 그럴 리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다. 내겐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던 셈이다. 100년과 1000년을 건너뛰고 우선 3000년 역사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인도, 이집트, 지중해 연안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기도 한 시안은 기원전 11세기 무렵 형성된 도시로 진·한·수·당 등 13개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과 더불어 세계 4대 고도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화려한 이력이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교역의 중심지로서도 그 명성을 날렸다.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이 활발할 때 여기로 와서 뿌리내린 아랍인들이 고유의 이슬람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며 여전히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와 과거,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뒤섞인 용광로와 같은 도시인 것이다. 내 마음이 급하다한들 그 역사성과 문화적 면모를 며칠간에 다 둘러볼 수는 없을 터이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시안은 여기저기 공사중이었다.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풍경이 펼쳐지리라던 기대를 배반하긴 했으나 시안 문화유산의 핵심이랄 수 있는 진시황(秦始皇)의 병마용갱 역시 가뭄에 우물을 파려던 농부에 의해 발견됐다니 저 포클레인의 삽 아래 또 어떤 오랜 문명이 긴 잠을 깨고 끌려나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병마용갱은 1974년 그렇게 물줄기를 찾으려던 농부의 삽 끝에서 처음 발견된 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발굴이 진행 중이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모양을 만들어 채색을 한 병사와 말이며 병마용갱이란 이 병마용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굴들의 군락이다. 여태 발굴한 것만도 1만2000여개에 이르는데 각각의 표정과 복장, 얼굴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악사의 표정은 부드럽기 한량없고 궁사의 눈빛은 날카롭다. 기병의 기골은 장대하고 치켜든 팔 모양새는 산이라도 뽑아들겠다. 머리카락의 결과 구부린 손가락 모양을 보자니 그 섬세함에 저절로 경탄이 나온다. 말들은 주인이 툭툭 흙먼지를 털고 일어나 그 등에 올라타면 긴 숨을 푸르르 토해내며 단숨에 달려나갈 것 같다. 보병과 기병, 작전사령부까지 있으니 그 규모와 섬세함이 압도적이다.

여기서 지척에 진시황릉이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그곳에 누워 있는 진시황을 지키는 호위부대인 셈이다. 37년 동안 국가재정을 쏟아붓고 완공한 후에는 노역에 동원한 인부들을 전부 죽여버린 황금궁전은 맹독과 수은으로 채워놓아 발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다.

여전히 복원중인 그곳을 둘러보며 처음엔 놀라고 감탄했다. 내외국인 관람객들이 무척 많았다. 겹겹이 둘러서서, 화려했던 채색은 바래고 잿빛으로 묵묵히 서 있는 병마용을 내려다보는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이 흙인형들의 호위를 받으며 황금궁전에 누워 있는 진시황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곳을 걸어나오며 나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살아 있는 신이었던 그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그리고 그 두려움에 대처하는 어리석음을 생각해 보았다.

황제는 흙으로 빚은 인형들이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믿을 만큼 어리석었던가. 어떤 커다란 두려움이 흙인형을 빚도록 만들었을까. 어떤 두려움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소유의 크기에서 나온다. 그것을 놓칠까 두려워 눈먼 어리석음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가졌던 그는 차마 그것들을 두고 세상을 떠날 수가 없었던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까지 사람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불로초의 부작용으로 죽었다는 블랙유머 같은 전설과 함께.

200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두려움과 어리석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재 핵 보유국들이 만들어놓은 핵의 총량이 지구를 몇 번이라도 산산조각 내어 날려버릴 수 있다니, 그것은 어쩌면 허수아비 병사들을 만들어 후손들이라도 먹고살게 해주는 진시황의 두려움보다 더 큰 어리석음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