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1촌이 농촌活力 이끈다>“애호박 순 따는 재미에 ‘푹’… 고향의 情도 함께 따 갑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노연홍 식약청장이 충북 청원군 강외면 쌍청2리의 애호박을 재배하는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직원들과 애호박 순 따기 작업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청원 =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지난 10월28일 충북 청원군 강외면 쌍청2리 마을회관 옆 마당. 10여분 거리에 있는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에 들어선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이 마을이 ‘1사1촌’자매결연을 했다.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고운 날이었다. 마을 어르신 20여명이 행사 시작 전에 와서 의자에 앉아 처음 맞는 손님에 대한 기대감과 약간의 긴장감을 얼굴에 드러냈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온 식약청 직원들이 행사장에 들어서 어르신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다. 마당 앞쪽에는 ‘오송 바이오농업의 메카’강외면이라고 적힌 행사용 텐트가 내외빈들을 맞았다.

오후 2시 행사 직전 노연홍 식약청장이 등장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검은색 점퍼에 고동색 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였다. 알고 보니 의례적인 자매결연 행사보다는 결연식 후 농촌봉사활동을 염두에 둔 옷차림이었다. 식약청 직원들과 마을 주민들의 조우는 선남선녀들의 소개팅마냥 좀 서먹서먹해 보였다. 하지만 행사가 진행되면서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노 청장의 인사말과 박광순(58) 쌍청2리 이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노 청장은 “한 번 왔다 일 한번 도와주고 가는 교류가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과 돈독한 정을 나누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박 이장은 “우리 마을을 고향처럼 생각해달라”고 화답했다. 노 청장과 박 이장은 이를 드러내 활짝 웃으며 자매결연 증서를 교환했다. 식약청은 마을회관에서 사용할 대형 냉장고를 선물로 준비했다. 또 ‘청원생명애호박’8㎏짜리 10박스와 ‘청원생명쌀’20㎏짜리 35포를 즉석에서 구매했다. 노 청장이 그 중 애호박 한 박스와 쌀 한 포를 번쩍 들어 변영돈(74) 노인회장에게 전달하자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쌀과 애호박은 마을 독거노인과 청원군에 있는 장애인 사회복지시설 ‘믿음의 집’에 기증됐다. 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마지막으로 자매결연 입간판 제막식이 진행됐다. 곧바로 마을 부녀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떡과 과일로 간단한 뒤풀이가 이어졌다. 회관 안에서 내외빈들과 자리를 함께한 노 청장이 박 이장에게 동네 목욕탕이 있냐고 물었다. 박 이장은 어르신들이 조치원까지 가서 목욕하고 오려면 반나절 정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노 청장은 “마을회관에 찜질방식으로 만든 목욕탕이 있으면 어르신들이 반신욕도 하고 건강과 위생에도 참 좋다”며 즉석에서 목욕탕 건립을 제안했다. 식약청이 좀 도와주고 마을에서도 조금 모금해 지어보자고 했다. 양측은 쉽게 의기투합했다. 동석한 유인재 오송농협조합장은 “5년치 비누와 수건을 제공하겠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인 화기애애한 자리를 끝내고 노 청장은 일을 하러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봉사활동은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애호박 순 따기 작업이었다. 이 마을은 33만여㎡ 땅에 호박과 오이, 수박 등 하우스 경작을 주로 하고 있다. 110호 400명의 주민 중 90% 이상이 호박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협을 통해 서울 도매시장에 출하한다. 봄과 가을에 하우스 호박을 재배하며 1월까지 출하가 가능하다고 한다. 자원봉사활동을 신청한 식약청 직원 50여명이 버스를 타고 5분여 정도 거리에 있는 비닐하우스 동으로 갔다. 눈 앞에 비닐하우스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애호박 비닐하우스 주인인 이현철(48)·김순희(42) 부부가 직원들에게 장갑을 나눠준 뒤 애호박 순 따기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직원들은 한 동마다 예닐곱명씩 흩어져 작업을 시작했다. 애호박은 심으면 15일 이내에 줄기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란다. 그래서 줄기인 순과 ‘은발’로 불리는 호박 수염, 헛꽃(호박이 달리지 않은 수꽃)을 따주지 않으면 영양분이 분산돼 호박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 10월 하순이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찜통 같았다. ‘청원생명 애호박’이라고 적힌 봉지 안에서 호박들이 연두색의 예쁜 자태를 드러냈다. 이곳 호박은 농약을 쓰지 않고 미생물을 이용한 ‘엽면 시비’라는 친환경 농법을 사용한다. 상품 호박이다. 호박 줄기에 달라붙어 부지런히 손놀림을 하는 식약청 직원들의 이마엔 어느덧 땀방울이 송송 맺히기 시작했다. 660㎡ 크기의 비닐하우스 한동의 길이는 100m 정도이다. 보통 일꾼 한 명이 순 따기 작업을 하려면 보통 4줄인 한 동 작업에 2∼3시간 걸리는데, 직원들 여럿이 한꺼번에 하니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호박 순 따기 작업은 처음인데 해보니까 참 심신건강에 좋은 것 같네요. 청사에 안 가고 이거나 할까봐요. 하하하.” 노 청장이 손으로 연방 순을 땄다. 직원 이도연(여·43)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이런 일을 처음 해보는데, 호박이 생산되는 현장을 직접 보는 경험을 하면서 마을 일도 거들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10년 넘게 식약청 내 봉사모임인 ‘참사모(참사랑을 실천하는 모임)’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옥미(여·47)씨도 “독거노인과 보육원 등에서 그동안 봉사활동을 했는데, 농촌 봉사활동을 해보니 고향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어서 남다른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른 하우스 동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직원 이종구(36)씨는 “식약청이 식품과 의약품 안전에 대해 다루는데, 식품의 초기 생산 단계를 직접 보면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두 시간여에 걸친 일을 마친 직원들은 오늘의 ‘품삯(?)’인 청원생명 애호박 한 개씩을 주인 이씨로부터 받았다. 하루 일에 대한 보람이 직원들의 환한 미소 속에 드러났다. 버스를 타러 걸어가던 한 직원은 “올 땐 별생각 없이 왔는데, 갈 땐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네”라고 넌지시 말했다.

청원 =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