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議員 ‘추방’ 국회에 맡겨둘 상황 넘었다

22일 국회 본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헌정사상 초유의 ‘최루탄 테러 사태’는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8대 국회 들어 폭력 사태가 반복되면서 갈수록 격화돼 왔지만 여야가 이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게을리했고 폭력을 휘두른 의원들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과 징계’ 관행이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회의 자성과 자체 개혁에만 맡겨둘 상황을 넘어섰다”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 과정에서 전기톱과 해머, 소화기 등이 동원된 폭력 사태가 발생한 뒤 국회 폭력 방지를 목적으로 한 입법이 잇따랐다. 하지만 23일 현재 이들 중 처리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물리력을 동원해 회의를 방해한 의원에 대해 형사고발을 의무화하고 최장 6년의 징역형까지 내릴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지만 모두 국회 운영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묶여 있다. 야당은 폭력 의원을 감싸기에 급급했고 여당은 ‘정치 쇼’ 이상의 입법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2008년 외통위 충돌 과정 등에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강기갑 의원, 민주당 문학진·강기정 의원 등이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국회 차원의 징계는 없었다.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사실상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2010년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이 강기정 민주당 의원을 주먹으로 폭행한 사건도 당사자가 화해하면서 유야무야됐다.

전문가들은 김선동 민노당 의원의 ‘최루탄 테러’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국회 폭력 방지 대책 마련을 더 이상 국회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정희(정치학) 한국외대 교수는 23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러다 사제폭탄이 등장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며 “김 의원은 안중근·윤봉길 의사를 거론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이번 사태로 국회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식으로는 ‘정치 무용론’, ‘정당 무용론’을 피할 수 없다”면서 “의원들로만 구성된 국회 윤리특위를 민간에 개방해 국민들이 국회의원 징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효종(윤리교육학) 서울대 교수는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는지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면서 “국회 폭력 처벌을 강화하고 면책특권 제한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치권이 힘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의식을 고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최루탄 테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남석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