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대학의 비전을 말한다>“수치·순위에 휘둘리지 않고… ‘사람 세우는 대학’ 기본에 충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건 서울시립대 총장이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캠퍼스의 집무실에서 자신의 교육 철학인 ‘사람을 세우는 대학’ ‘세상을 밝히는 대학’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최근 ‘반값등록금 시범학교’란 별명을 얻으며 대학가의 화제로 떠오른 서울시립대학교의 이건(57) 총장을 만났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창 진행 중이던 10일 오후 늦은 시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대학본부 총장실에서였다. 그는 2001년부터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0년 차인 올해 5월 제7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이 총장은 외부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반값등록금 이슈에 대해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교양과목 중심의 기초가 튼튼한 대학 만들기’란 자신만의 화두에 더 몰두해 있는 눈치였다. 그의 짧은 설명이다.

“반값등록금이란 큰 차원에선 정치의 문제죠. 사실 고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구조 자체를 만들지 말았어야 합니다. 김영삼 정권 당시 준칙주의를 도입하면서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어가기 시작했지요. 지난 20년간 곧장 노동 시장에 진입해도 될 고교생들이 2~4년 동안 대학에서 제 몸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느라 시간은 흘려보내고 눈높이는 높아져 30대를 맞이했습니다. 이들은 경제 발전 단계상 ‘고용 없는 성장’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취업은 안 되고, 기성세대를 향한 불만은 쌓여만 가지요. 교육에 정치 논리를 주입해 좌지우지했으니, 원 참. 지금의 반값등록금도 정치적 구호 냄새가 짙습니다.”

이 총장은 그러나 국공립대의 등록금 문제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 교육 서비스란 복지의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국공립대는 사실 등록금 부담이 거의 없는 형태로 가는 게 맞습니다. 사립대야 얼마를 받든 양질의 교육으로 일류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 됩니다. 하지만 국공립대와 사립대는 엄연히 다르죠.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는 공공에 기여해야 하는 공익성 측면이 좀 더 강합니다. 예컨대 국공립대 의대는 공공 의료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립대의 현재 등록금은 연평균 477만원 선. 학기당 이 정도 등록금을 받는 사립대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다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값등록금 공약에 따른 절반의 재정 지원을 더하면 238만원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는 학생들이 1개월에 20만원쯤 학교에 돈을 내는 셈이다. 제일 싼 고시원 월세 정도랄까. 파격적인 ‘교육 서비스 가격’이다. 여기서 일단 돈 이야기를 접고 교육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이 총장은 취임 직후 ‘사람을 세우는 대학’, ‘세상을 밝히는 대학’ 두 가지를 대학 운영 방향으로 선언했다. ‘세계 명문대 진입 2020 플랜’ 같은 구호가 난무하는 대학가에 웬 공자 말씀인가 싶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준다는 뜻입니다.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알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을 몸소 생각하면서 익히는 것이지요. 대학의 원래 기능은 이렇게 자율적인 지식인을 배출하는 일입니다. 세상을 밝힌다는 뜻은 이렇게 배운 지식과 경험을 이웃을 위해 쓰라는 겁니다. 공공성, 공익… 이런 것들이 국공립대인 서울시립대 졸업생들이 앞장서 실천해야 할 가치라고 봅니다.”

이 총장은 전 직장인 동국대에서 4년간 대학 개혁 작업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때 전임교원 확보율, 졸업생 취업률 같은 수치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는 데 질려 버렸다. 교육 당국이 원하는 틀에 맞추는 일을 몇 년 하다 보니 오히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반성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본연의 ‘잘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 기초로 돌아갔다. 교양교육을 강화하고 교내에 교육인증원을 설치해 강의의 내실을 꾀하는 변화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전임교수에게 교양과목을 맡기고 전공에 필요한 심화교양교육도 별도로 실시한다. 내년부터 학생들은 창업·정보기술(IT)·외국어·봉사·취미(악기, 운동 등) 가운데 1개를 선택해 이를 4년간 8학점 이수해야 한다. 강의평가도 수업 호감도가 아닌 강의의 질을 가늠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건축·공학·경영 등 외부 인증을 따로 받지 않던 인문계열 전 학부·과에 자체 인증 시스템을 마련해 학생도 교수도 공부하는 분위기로 꾸몄다. 이런 노력이 인정을 받은 덕분일까, 서울시립대는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의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선정돼 대학 경쟁력 평가 순위 4위를 기록했다.

또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사회 봉사를 전담하는 사회봉사팀을 출범시키고 학교 주변 동대문구·중랑구의 저소득층 가구 자녀를 대상으로 학습 보조 및 영어캠프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총장은 대학 재학 시절 7년간 서울 광진구 화양동 성당에서 야학교사로 어린 근로자들을 가르쳤던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다. 서울시립대 학생 중 소득 수준 하위 50%에 등록금의 절반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려는 그의 구상도 이 같은 기회 균등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울시립대는 1918년 경성공립농업학교로 개교해 93년 역사를 지닌 국내 최초 유일의 공립 종합대학교다. 1956년 농업대학교로 승격했다가 1974년 서울시로 관리가 이관된 뒤 1987년 종합대학으로 올라섰으니 시립대의 본격 면모를 갖춘 것은 30년이 채 안 된다. 학부 입학 정원이 1768명으로 작은 대학이지만 ‘도시학의 메카’로 불릴 만큼 이 분야에서 특화된 교육 기관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로 건축학교육 국제인증을 획득했으며, 도시과학 특성화교육을 통해 6년 연속 특성화 우수 대학으로 뽑혔다. 서울시장이 시립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어 사실상 서울특별시를 대표하는 대학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장학금 수혜율이 57.9%에 달할 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드는 ‘강소’대학으로 분류된다.

대학의 공식적 외관을 파악하고 나니 이제 남은 궁금증은 이 총장의 개인사로 집약됐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져 봤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는 사회학으로 받았는데 문리 통합적 진로 선택의 계기가 있나.

“미국에 가 보니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선 통계를 배우는 이도 있었다. 인문학도 감성의 학문이 아니라 분석의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분석이냐, 기호의 분석이냐가 차이일 뿐이다. 논리의 객관성 확보, 달리 표현하자면 어떻게 논리적 사고를 전개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시를 읽고 감흥은 누구나 받지만 이를 분석하는 일은 다른 차원이다.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양수업을 중시하고 있는데 교내 교수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

“전공은 대학 전체 차원에서 손댈 방법이 없다. 교양은 본부에서 주관하니까 개혁이 가능하다. 물론 성과도 보이지 않는 일이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수들 가운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대학이란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첫째, 논리적 사고로 항상 탐구·연구하는 자세를 갖고 둘째,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왜 하느냐는 목적 의식을 충족시키려면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경쟁을 많이 해 본 사람이라야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많은 실패와 성공을 해 보면 이것이 미래의 자산이 된다.”

―가까운 목표를 소개한다면.

“동문들이 원하는 제2캠퍼스 조성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2018년 설립 100주년을 맞을 때 전임 총장이 공약한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는 구상도 이어받을 생각이다. 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숨진 우리 학교 황승원 학생의 사고를 계기로 저소득층 재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꾸준히 시와 협의해 개선시켜 나가겠다.”

―내 평생의 책 1권과 최근에 읽은 것 중 가장 좋았던 책을 꼽자면.

“무협지를 많이 읽었다.(웃음) 내가 책을 무지무지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젊을 때 큰 영향을 받은 책은 브라질의 파울로 프레이리가 쓴 ‘억압받는 자의 교육(Pedagogy of the Oppressed)’이다. 교육을 통한 개혁의 힘을 강조한 내용이다. 두 번째는 2001년 읽은 리처드 라이트 하버드대 교수의 ‘메이크 더 모스트 오브 컬리지(Make the Most of College)’, 국내 번역본은 ‘대학에서 최대한의 것을 얻으려면’ ‘하버드 1600명의 공부법’ 등으로 나와 있다. 하버드대 졸업생을 10년간 추적 조사한 서적이다.”

■이건 총장은…

▶1954년 부산 생 ▶1972년 경기고 졸업 ▶1977년 서울대 자연과학대 수학과 졸업 ▶1982년 미국 럿거스대 수학 석사 ▶1985년 사회학 석사 수료 ▶1993년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1995~2001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연구처 부처장·교육개혁추진단 부단장 ▶2001~현재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 도시사회학과 교수

인터뷰=노성열차장(사회부)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