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동의보감 새로읽기>‘음식의 氣味’ 나눠 맛을 골고루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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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특징 중 하나가 한두 가지 음식 혹은 약물로 병을 다스릴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이를 ‘단방(單方)’이라고 하는데, 보통 민간요법이라고 한다. 단방의 전통은 한의학에서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아마도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최초의 약물학 저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약물을 다루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음식에 대한 저작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고 하는데, 이는 음식과 약물을 기와 미로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원래 넓은 의미에서의 기는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이나 약물을 말할 때는 이를 다시 기(氣·좁은 의미에서의 기)와 미(味)로 나누어, 이 좁은 의미에서의 기로 한열온량과 같이 열과 관련된 측면을 나타낸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사람으로 하여금 열을 내게 하는가 아니면 춥게 만드는가를 기로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의 기)는 차다”고 말하는 것은 돼지고기의 물리적 온도가 찬가 더운가를 말한 것이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으면 내 몸에 찬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기미에서의 미는 말 그대로 맛이다. 그러나 이 맛도 단순히 혀에서 느껴지는 맛이라기보다는 몸에서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실제 인삼을 먹어 보면 약간 쓴맛이 나는데도 “인삼은 달다”고 하는 것은 인삼이 우리 몸에 들어가 단맛과 연관된 비위(脾胃)에 작용하는 효과를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약이란 음식과 같은 것이다. 다만 약은 음식에 비해 기미가 더 강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에는 약을 독(毒)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의 ‘독’은 오늘날 말하는 독성이 아니라 “그 사람 참 독하다”라고 할 때의 용법과 같이 세다, 강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기미가 고르기 때문에 오래 먹어도 몸에 큰 지장이 없는 것은 음식이 되었고 기미가 치우쳐서 오래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은 약이 되었다. 음식을 약으로 쓸 때는 독을 강하게 하기 위해 대부분 말려서 쓴다. 말리면 기미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징어는 날로 먹으면 냄새도 별로 없고 맛도 담백하다. 그러나 오징어를 말리면 강한 냄새와 함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도라지도 마찬가지다. 날로 먹으면 음식이 되지만 말려 먹으면 길경(桔梗)이라는 약이 된다.

한의학은 어떻게 보면 너무 쉽다. 몸이 차면 더운 음식이나 약을 먹으면 되고 반대로 몸이 더우면 찬 음식이나 약을 쓰면 된다. 어떤 음식의 성분이 무엇이고 열량이 어떻고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음식이 찬가 더운가, 단가, 쓴가, 한마디로 그 음식의 기미가 어떤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고 하지 않고 맛을 골고루 먹으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음식을 골고루 열 가지를 먹었는데 모두 단맛이 나는 음식을 먹었다면 한의학의 관점에서는 한 가지 맛만 먹은 셈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음양의 조화다. 양기만 넘치고 음기가 모자라면 병이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맛도 그러하다. 한의학에서 모든 맛은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의 다섯 가지로 나뉘는데 이 맛을 치우치게 먹으면 몸의 기도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음식이나 약을 기미로만 나누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음식과 약은 제작기 오장육부와 연관하여 작용하는 곳이 다르다. 심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고 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다. 여기까지 알고 나면 이제 나 스스로 내 몸을 다스릴 수 있는 길을 반 이상 알게 된 것이다. 나머지는 그 병이 무슨 병인지, 어떤 장부와 연관이 있는지만 알면 된다. ‘동의보감’이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말은 동의보감이 바로 이런 이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형적인 예가 바로 단방이다.

한의사, 들꽃피는요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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