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신춘문예>절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두 가지 행로 - 신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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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조연수기자 choys@munhwa.com

1. 지금-여기 청년세대의 곤경

해마다 연말이 되면 희망찬 새해와 밝은 미래를 주문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대체로 올해보다는 더 나은 새해를 보내라는 내용의 덕담인데, 이맘때쯤이면 으레 주고받던 그 인사말들이 올해만큼 면구스럽게 느껴진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수십만의 생명을 한꺼번에 삼켜 버리는 자연재해와 인공재해의 산재(散在), 인간이라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을 것 같은 잔혹한 범죄의 난립, 그런 것들은 모두 남의 일이라는 듯이 무심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까지.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나아질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지리라는 것보다 허망한 기대가 또 어디 있겠는가.

덕담의 대상이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10대, 20대 청년들이라면 사정은 보다 곤궁해진다. 최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던 시위의 구호처럼, 1%의 소수를 위해 99%의 사람들이 희생을 감내하는 작금의 경제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청년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내년에는 살기가 좀 수월해질 것이라는 말은 안이한 예측으로 들릴 뿐이다. 유례없는 청년실업과 빈부격차의 심화, 무한경쟁의 전면화와 내릴 줄 모르는 등록금까지,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의 조건들은 어느 것 하나 녹록지가 않다.

사실상 지금-여기 청년세대를 가로지르는 정서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된 지 오래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내면을 세심히 살피기를 주저해 왔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성적을 받자 엄마를 살해한 고등학생,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능 다음 날부터 성매매에 뛰어든 여학생, 취업이란 미명하에 서로를 옭아매 버린 거마대학생 등, 어느덧 한국 사회의 치부 중에서도 가장 심급이 된 청년세대의 사정은 재빨리 사건으로 정리되어 보도된 후, 성급하게 미봉되기 일쑤였다. 이제는 절망을 넘어 온갖 증상으로 발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적 곤란을 곱씹어 헤아리는 일은 거대한 잔여로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둘러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 잔여를 가져다 쓰는 일을 자임하는 소설이 있으니 말이다. 특히 동세대의 경험과 사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김애란과 김사과1), 두 젊은 작가는 등단 이후로 줄곧 지금-여기 청년세대가 맞닥뜨린 곤경으로부터 소설의 자양분을 끌어오고 있다. 그녀들의 소설은 절망하는 청년세대의 내면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전망,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이 자기를 세워 나가는 방식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아마 우리는 그녀들의 소설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곤경을 바로 이해하고, 지금-여기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함께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절망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다시 살아볼 만한 세계로의 형질 전환을 시도해볼 수도 있음직하다.



2. 세대를 정위(定位)하는 방식

언뜻 보기에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을 묶어, 함께 다루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소설 표면상에 드러나는 요소들, 즉 김애란과 김사과가 구사하는 어휘, 비유, 수사, 문체 등의 측면만 보더라도 그녀들의 소설은 전혀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를 구성하는 두 힘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누어 설명했던 니체의 정리를 빌려 표현하자면, 김애란은 언어의 조형력을 무기로 꿈의 형상을 축조하는 데에 능한 아폴론적 예술가에 가깝고, 김사과는 언어로 리듬의 물결을 만들어 내는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예술가와 흡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을 함께 논하는 것은, 우선 그녀들의 소설에서 절망하는 인물들이 모두 지금-여기 청년세대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먼저 김애란의 경우를 보자.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나’들은 “고3때 반장이 되거나, 대학 때 아르바이트생이 되거나, 아랫방 처녀가 되거나, 우물쭈물하는 수습직원이 되거나, 날짜를 잘 어기는 납세자가 되거나, 아는 여자가 되거나, 맥줏집 단골이 되거나, 신중한 소비자가 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달려라 아비』, 135면)”면서 「영원한 화자」의 역할을 맡는다. 그런가 하면 김사과는 등단작 「영이」에서부터 주인공 영이가 “수많은 영이들 중 하나일 뿐(『02』, 9면)”이라고 선언한다. 그러고는 한나(「과학자」), 이나(「이나의 좁고 긴 방」), 미나(『미나』)와 같은 여러 “나 양(『02』, 37면)”들을 소설의 화자로 삼고, b(「나와 b」), y(「매장」), 한(「정오의 산책」), 풀(『풀이 눕는다』)처럼 미처 이름이 되지 못한 ‘나’의 분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처럼 그녀들의 소설은 ‘나’를 언제나 가변적인 상태로 남겨둠으로써, ‘나’와 동일한 자리에 놓일 수 있는 하나의 집단 혹은 세대를 연상케 한다. 그녀들의 소설이 계속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이 세대를 지금-여기의 ‘88만원 세대’로 유비시켜 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은 그들이 누구인가보다는, 그들이 왜 절망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데 보다 더 주력한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소설에서 청년들은 왜 그토록 절망하는가. 다음에서 인용하는 김애란의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한 구절은 그들이 절망에 이르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나는 자꾸만 주변부로 밀려났다. 나는 수학이 약하니까 꼭 들어야 하는데, 지난달 수업이랑 이어지니까 정말 꼭 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곳에 있던 천여 명의 사람들에게도 그 수업을 꼭 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힘껏 밀었다. 머릿속이 핑-하고 돌았다. 곧 헛구역질이 났다. 조금만 더 있다간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다. (『침이 고인다』, 140면)


재수학원의 인기 강좌를 등록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천여 명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이리저리 휩쓸리다 결국에는 떠밀려 넘어지는 ‘나’를 보면서, 그들의 절망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자의식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름지기 그 사회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가지고 사회가 곧추세우는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여기고 추구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이상적인 모습의 개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품고 자신의 삶을 조형해 갈 것이다. 그러나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청년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에 한참 미달한다. 심지어 그들의 처지에 상응하는 대상은 엘에이 한인촌을 습격한 흑인이나(「나는 편의점에 간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외다리 외국인 노동자 청년(「성탄특선」), 다리를 절며 폐지를 줍는 할머니(「니약 따」)와 같이 사회와 불화하는 범죄자이거나, 사회적 소수자, 또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로 제시된다. 김사과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아 학생들, 제어되지 않는 분노와 알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칼부림을 하는 회사원(「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풀이 눕는다』, 145면)”의 심정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역시 사회와 불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 속 청년들은 사회와 불화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묶일 수 있지만, 그 불화의 방식은 전혀 동일하지 않다. 『기나긴 혁명』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논한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김애란의 인물들은 신민(subject)이거나 하인(servant)의 역할을 맡고, 김사과의 인물들은 망명자(exile)와 부랑자(vagrant) 사이에서 진동한다. 예컨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삶의 방식을 세우고 재단하느라, 반쪽 혹은 삼분의 일쯤으로 조각난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가는 고시원의 여자들(「노크하지 않는 집」)이라든가, 내키지 않아도 오늘 하루 열심히 얼룩말처럼 달리고, 곰처럼 춤춰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그녀(「침이 고인다」), 그리고 꽃 같은 20대를 독서실 칸막이 안에서 보내느라 얼굴이 새까매진 언니(「기도」)와 같은 인물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삶의 방식과 그 안에서 자신에게 지정된 위치를 수용하는 신민들이다. 그리고 소독한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는 것을 로망으로 삼으면서, 그런 것 하나가 자기 삶을 어떤 보통의 기준에 가깝게 해주고 또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은 환상을 품고 사는 사내(「성탄특선」)와 고작해야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서 선택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나’(「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스스로를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착각한 채 자기 삶에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환각 속에서 사는 하인의 처지에 놓여 있다.

반면 김사과의 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생활 방식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김애란의 인물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삶이 점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우리 둘 다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불안정한 방식을 유지해야 했다. 그게 우리가 세상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하찮은 문제들-배고픔, 불편함, 불투명한 미래-따위가 두려워서 항복해 버리면 그다음에 남는 것은 통째로 집어삼켜지는 것뿐이었다. 세상은 굶주린 어린아이 같아서 만족을 몰랐다. 아니 굶주림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굶주림이 우릴 노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삶을 불확실성 속으로 완전히 밀어 넣을 것. 우리 자신조차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것. (『풀이 눕는다』, 161면)


김사과의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의 행적을 증언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위의 인용문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목적들을 거부하고 그 사회의 가치관을 경멸한다는 점에서 일견 망명자의 진술처럼 들린다. 그러나 김사과의 소설에서는 사회의 부조리함이 세계의 어디에나 편재해 있다는 전제로 인해, 인물들은 어떻게 해도 절망적인 현실에서 탈출하거나 빠져나갈 수가 없다.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의 나열이나, 같은 단어의 의미 없는 반복과 같이 문면에 드러나는 김사과 소설의 특징은 인물이 처한 막다른 지경에서 비롯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즉 망명할 출구가 애초에 막혀 있어 엄청난 긴장 속에서 ‘내부’ 망명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까닭에 김사과의 인물들은 타협에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는 내면의 원칙을 지키면서 ‘혼자’ 걷는 사람이 된다. 그러다 서사 자체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되더라도, 그녀의 인물들은 끝끝내 걷기, 그 자체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몸이 사라질 정도로 비약해 간다.


막다른 곳에 갇힌 수정의 분노는 불법적인 출구를 찾아낸다. 그러나 수정은 그것을 무시한다. 다른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수정은 걷기에 몰두한다. 그러자 어느 순간 손이 사라진다. 수정은 감탄한다. 정신을 집중하고 팔과 가슴과 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머리가 사라지고 종아리와 허벅지가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무릎과 발목이 사라진다. 오직 두 개의 발이 남아 계속해서 전진한다. (『미나』, 223~224면)


김사과의 소설이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지점, 서사가 허구에서 무의미한 기표들의 나열로 변모하는 지점은 바로 이런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방향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개의 발만 남았을 때, 소설은 혁명가가 되지 못한 자들의 비명으로 가득해진다. 그리고 이때 소설은 아무데도 가지 않으면서 계속 걷기만 하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랑자의 걸음을 따르게 된다. 분명 내부 망명자의 섬뜩한 행보와 부랑자의 휘청거리는 발걸음은 그 목표와 효과가 뚜렷이 구별된다. 다행히도 영민한 작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인물이 걸어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최근작 「더 나쁜 쪽으로」를 보면, 이 모두가 섣부른 기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 속 한 구절이 이미 예견한 것처럼,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잠시 길을 잃은 것뿐이기 때문이다.(『풀이 눕는다』, 294면)”



3. 세계를 재현하는 상상력의 두 갈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살피고 설명하는 일이 한 세대를 정위하는 요긴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지만, 소설이 단지 지금-여기의 시공간 안에서 소비되고 말아버릴 일회용이 아닌 까닭에, 좋은 작품에는 그 세대를 ‘조망’하는 관점이 동시에 필요하다. 조망한다는 것은 한 세대를 종과 횡으로 구획된 좌표상에 올려놓고 살펴본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소설 전반에 흐르는 절망의 정서를 일시적인 파토스의 분출이나 제한된 지역의 문제로 국한시켜 보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한다.

청년세대의 절망을 이야기하는 소설 중에서도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을 ‘함께’ 읽어봄직한 까닭은, 그녀들의 소설에는 시공간의 좌표축을 만들어 내기 위한 풍부한 상상력이 상보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상력도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실천했던 선구적 업적들을 염두에 두고서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에 나타나는 상상력의 특징을 각각 구조화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전자에 ‘종적 상상력’, 후자에 ‘횡적 상상력’이라는 이름을 임시적으로나마 붙여볼 수 있겠다. 김사과의 소설을 논하고 있었던 만큼, 논지의 원활한 전개를 위해 이번에는 그녀의 소설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서울은 카길 사의 소고기 패티를 얹은 흰 밀가루빵이며 그것의 다른 이름은 지옥이다. 그것이 지옥인 이유는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는 영혼이 없다. 인간에게 영혼이 없듯이, 풍경은 의미없이 걸려 있고, 더이상 하늘은 색의 변화로 시간을 가리키지 못한다. 계절은 가을을 가리키지만 나는 그것을 볼 수가 없다. 대신 보이는 것은 펼쳐진 아파트들이다. 그것들은 현대회화처럼 여기저기 걸려 있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하고 반쯤 부서져 있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하고 깜빡거리기도 하고 … 풍경이 나를 상처입힌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재빨리 그것을 다른 것으로 교환한다. 교환되는 사이 그것은 좀더 아름답고 또 단순해진다. 펼쳐진 흰 방처럼, 혹은 음악처럼, 노래가 반복된다. 나무가 다가오고 다시 멀어진다.(『02』, 228~229면)


위에서 인용한 「매장」의 한 구절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김사과는 도시의 풍경을 묘사하는 일에 특히 공을 들인다. 주지하였듯이 그녀에게는 인물들을 계속해서 어딘가로 걷도록 하는 것이, 서사를 진행시키는 동력이자 에너지이다. 그러다가 「정오의 산책」에서의 한 장면과 같이, “갑자기 거리가 나를 향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02』, 194면)” 순간과 조우하면, 억눌려 왔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인물들은 가공할 만한 폭력과 어지러운 혼돈 속으로 스스로를 기꺼이 밀어 넣는다. 괴이할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는 도시의 풍경이 인물의 행위와 서사의 중심 사건을 촉발시키는 단서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김사과의 상상력은 횡의 선상을 따라 이동한다. 가령 인물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면, “낡아 떨어진 페인트와 금 간 벽들, 뒤틀린 복도, 깨진 창문, 고장난 등(『02』, 180면)”이 연쇄적으로 이끌려 나오는 식이다. 횡적 상상력으로 꾸려진 세계에서는 시선을 가로지르는 풍경이 계속적으로 등장하며 서로 교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사과의 소설에 나타나는 그녀의 상상력이 문제적인 것은 지옥과도 같은 도시가 횡적 상상력을 경유하여 재현되면서, 예기치 않은 결과들을 산출해내기 때문이다. 일찍이 질베르 뒤랑이 ‘검(刀)의 이미지’로 명명한 상상력의 분열 형태적 구조를 취하고 있는, 김사과의 횡적 상상력은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요소요소들을 잘라 너절하게 나열하는 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이」에서부터 시작된 신체를 절단하고 그중 한 부분만을 과장하여 묘사하는 데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이 신체 절단의 모티브는 장편 『미나』에 이르러 친구들끼리 팔과 다리를 칼로 자르는 행위로 이어지는데, 그녀는 화자의 입을 빌려 그것이 모두 ‘도시의 리듬이 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었다고 항변한다. 즉 김사과에게 있어서 횡적 상상력의 구조는 도저히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공포와 불안으로 뒤덮인 세계를 토막 내어 묘사하거나, 그에 걸맞게 인물의 신체를 절단하는 방향으로 현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물이 맞닥뜨린 세계가 지옥과 같다는 것을, 어쩌면 지옥보다 더 절망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임이 틀림없지만, 이러한 세계관을 견지할 때 지옥 이외의 세계는 영원히 부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횡적 상상력에 기대어 만들어진 ‘도시의 리듬’ 안에서,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축은 하나의 점, 즉 현재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수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 그녀의 인물이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물과 인간과 그것을 감싼 힘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목격하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시시한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깨달았다(『02』, 171~172면)”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김사과는 “시간의 최종 모델은 거울이 거울을 비추는 것”이라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여전히 시간은 오후 두 시이고 같은 노래가 반복된다. 여전히 계절은 지옥이고 계절의 습기가 도시를 조금씩 미치게 만든다. 해는 새벽의 달처럼 차갑게 빛나고 그런 해 아래에서 누군가 누구를 칼로 찌르는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을 것(『02』, 244면)”이라고 끔찍한 예언을 남기는 것이다.

김사과의 횡적 상상력이 절망이 횡행하는 공간을 분할하고 확장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면, 김애란의 종적 상상력은 가능한 한 시간의 좌표축을 멀리까지 늘이는 일에 몰두한다. 이를 반증하는 가장 선명한 예는 최근작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찾아진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 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 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두근두근 내 인생』, 7면)


김애란의 소설에서 우리는 자신이 발붙이고 서 있는 바로 그 순간을 훌쩍 뛰어넘어, 과거로 소급해하거나 미래로 도약해 가는 인물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인용문은 물론이고 이와 비근한 예들은 그동안 그녀가 발표한 단편들 도처에 산포해 있다. 예컨대 「달려라 아비」, 「스카이 콩콩」,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플라이데이터리코더」, 그리고 「물속 골리앗」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이야기를 하는 어린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들의 경우 대부분이 해당된다. 그중에서도 『두근두근 내 인생』은 어린 화자가 조로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을 통해, 종적 상상력에 의거한 시간의 증폭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재미없는 농담이겠지만, ‘한아름’이라는 이름의 인물은 그녀의 종적 상상력의 구조와 그 속성을 ‘한 아름’ 품고 있는 셈이다. 형식상으로는 가족 로맨스를 빌려 꿈이나 상상이라는 틀 속에서 전개되는 김애란의 종적 상상력은 대개 시원의 이미지들을 현재와 맞붙여 놓음으로써, 세대가 바뀌어도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삶의 이치라든가 본질 같은 것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김애란의 상상력의 구조가 소설의 표면상에 드러나는 양상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이루어져 있는 바이거니와, 그녀의 상상력이 궁극에는 한 세대를 조망하는 시간의 좌표축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논지를 이어가기 위해,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내가 반복해서 꾸는 꿈은 이거다. 나이를 먹지 않은 내가,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와 텀블링을 하는 것. 그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뀌며 여러 가지 변주를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퉁-하고 내가 뛰어오른 뒤 아버지가 돼 내려오고, 퉁-하고 아버지가 날아오른 뒤 내가 되어 내려오는 것. 혹은 이럴 때도 있다. 내가 한 번씩 점프할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것. 팔십이었다가 육십이었다가 열일곱이 되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진짜 내 나이가 되는 것. 그래서 한번도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보는 것. 하지만 꿈속 그림은 너무 아스라해, 나는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다. 만져 보고, 확인하고 싶은데, 꿈속 카메라가 점점 뒤로 멀어져 원경으로 빠진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젊어졌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자마자 잠에서 깬다. (『두근두근 내 인생』, 145~146면)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생물학적으로는 젊지만 병으로 인해 젊게 살 수 없는, 절망적 상황 가운데 놓인 ‘한아름’은 세대를 거슬러 조부, 그리고 부모의 이야기와 자꾸 만나 보려 시도한다. 궁극에는 소설을 창작하는 데까지 이르는 이 노력은 ‘진짜 내 나이가 되어 한 번도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보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일찍이 「스카이 콩콩」에서 시작된, “세계의 소란스러움을 등지고 가로등 아래서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타는, 뭐랄까 어떤 ‘정신’이 들어 있는 것 같(『달려라 아비』, 65면)”았던 수직적 점핑, 달리 말해 시간의 축선을 오락가락하며 세계를 톺아보는 김애란 소설의 목표와 지향은 바로 ‘내 얼굴’, 즉 나이는 젊지만 이미 늙어버린 청년세대의 면면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세대를 인간의 역사라는 긴 시간의 축에 놓고 조망하게 하는 종적 상상력은, 지금껏 그녀의 소설이 부지런히 지금-여기를 가로지르는 절망을 이야기해 왔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참조점인 동시에 논란의 지점이 된다. 현재를 아득히 멀고 먼 과거와의 연속선상에 배치하고서, 세계의 소란스러움을 등질 때, 지금-여기를 가로지르는 절망의 정서란 너무나 쉽게 와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바람, 나무, 울창한 숲, 동물들의 짝짓기 등 자연적이고 시원적인 이미지들의 나열 속에서 한 세대가 가지고 있는 절망의 정서는 쉽사리 축소, 요약되거나 심지어는 소멸되어 버린다. 질베르 뒤랑이 ‘밤의 체제’로 일컬었던 상상력의 종합적, 신비적 구조와 대체로 닮아 있는 김애란의 상상력은 역사라는 거대한 시간의 자장 속에서 모순적인 것들을 쉽게 봉합해 버리고, 모든 부정적인 것들에도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며, 화해와 평화로움을 향해, 공포를 완화하고 불안을 위로하는 방향으로 계속 상승-하강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4. 위장(僞裝)의 화법, 닫힌 세계에서의 절규

소설 속에 축조된 세계를 분석함으로써 파악되는 상상력의 구조는, 작가가 소설 안에 세계를 재현하는 특정한 방식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한 준거가 되지만, 또 한편으로 소설 안에 배치된 인물의 행적을 좇아 그 특징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일에도 중요한 거점이 된다. 특히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에서 각각 찾아지는 종적 상상력과 횡적 상상력은, 종으로 늘어나고 횡으로 펼쳐진 좌표에 인물을 배치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로써 시공간의 벡터가 부여된 인물들의 발화는 그 인물이 대표하는 세대의 삶의 방식과, 세계를 전망하는 태도,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대응하는 자세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먼저 시간의 축선 위에 인물을 놓고, ‘부모’로 대표되는 이전 세대와의 관계 속에서 이들을 조망하는 김애란의 경우를 살펴보자. 앞서 밝힌 바대로 김애란의 화자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불화한다. 그런데 종적 상상력의 개입과 함께, 인물들이 자신의 부모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그들은 곧 별 무리 없이 사회에 편입되거나, 그렇게 되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다. “엄마는 늘 바빴다. 애들은 빨리 때려서 빨리 키워야 했고, 만두는 그보다 더 빨리 쪄내야 했다(『침이 고인다』, 17면)”라든가, “아버지는 평생 못쓰게 된 물건들을 고치느라 시력과 항문 그리고 허리가 망가지셨다(『달려라 아비』, 64면)”는 언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김애란의 소설에서 부모란 노동하는 인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부모로부터, 어쩌면 훨씬 먼 세대로부터 유구히 내려오는 것 같은, 그래서 마치 인간 삶의 본질처럼 여겨지는 노동의 책무를 쉬이 저버릴 수는 없다. 결국 이들에게는 오직 “엄마가 자식의 사회적 지위 혹은 권력을 구체적인 증거와 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취직을 하는 것(『침이 고인다』, 191면)”만이 시급한 과제가 된다. 김애란의 인물들이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비로소 선택의 여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환상과 착각을 품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노동은 해야 하지만 절망은 계속되기에, 절망을 외면하고 노동의 세계에 계속해서 복무하려면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착각과 환상을 무너뜨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수시로 그들의 일상을 덮쳐 온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약간 좋은 목욕 용품으로 샤워를 하면서, 돈을 벌어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침이 고인다」의 ‘그녀’에게 어느 날 찾아온 불편한 손님인 ‘후배’처럼, 그것은 불쑥 일상에 틈입해 들어 ‘그녀’의 고독하고 편안한 삶을 방해한다. 김애란의 소설에서 종종 ‘수치’로 표현되는 그 불편함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어제처럼 혼자 얼굴을 찌푸린 채, 제 마음속의 사관(史官)에게 후배의 습관을 고자질(『침이 고인다』, 74면)”한다. 별다른 맥락 없이 튀어나온 ‘사관’이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일찌감치 우리가 김애란의 소설에 나타나는 상상력의 구조를 살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사관처럼 현재와 관계하는 과거의 시간에 대해 기록해온 김애란의 소설은, 노동의 세계에 복무하는 ‘그녀’가 때때로 느끼는 수치를 외면하고서, 유유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도망치는 ‘그녀’의 궤적은 김애란의 화자들이 취하는 특정한 화법으로부터 보다 적확하게 파악된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이 담긴 편지를 거짓말로 번역해 어머니에게 읽어주는 「달려라 아비」의 어린 화자를 비롯해 김애란의 인물들은 농담과 거짓말에 능숙하다. “번역, 그것은 세상을 불신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배운 옹알이(『달려라 아비』, 104면)”라는 말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되듯이 그녀의 인물들은 세상과 불화하는 내면을 다스리는 화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다. 내면에서 무언가 꿈틀댈 때, 세상에 윽박지르고 싶을 때, 그녀의 인물들은 농담, 거짓말, 번역의 방식으로 발화하는 것이다.

위장의 화법을 취하기는 김사과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과도하게 예민하고 연약한 인물들은 횡으로 무한하게 펼쳐진 지옥의 세계에 배치되는데, 가령 “피투성이가 된 영이가 흙먼지 가득한 황갈색 땅에 혼자 누워 있(『02』, 33면)”는 식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텅 빈 시간을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기에, 인물들의 말은 분열증자의 그것마냥, 반복되거나 늘어지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아직 옹알이도 떼지 못한 아기의 표현 방식이 울음, 떼쓰기, 폭력인 것과 유사하게, 김사과의 인물들은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내면을 조리 있게 설명해낼 줄 모른다. 따라서 그들의 발화는 언어의 정연한 구조에서 자꾸만 비껴서거나 돌출되는데, 이는 텍스트의 표면에서 말줄임표의 연속적 나열이나 활자의 포인트가 갑작스레 커지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처럼 김애란과 김사과의 인물들이 절망하고 있는 내면을 서둘러 감추거나(김애란) 과장하는(김사과) 위장의 화법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인물이 애용하는 화법이 세계에 대한 반응을 내재한 발화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화법은 소설 안에 재현된 세계와 깊은 연관 관계를 가진다. 김애란과 김사과는 앞서 밝혔듯 종과 횡이라는 상상력의 운동 방향을 따라 소설 속의 세계를 축조해 가는 중인데, 이 과정에서 간과하게 되는 것이 있다. 김애란의 경우 제한된 지면 내에서 길고 긴 시간을 증폭시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시간의 계기성에는 상대적으로 무신경해진다. 그런가 하면 김사과의 경우 공간의 편재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세계를 묘사하는 통에, 융기되거나 침강된 공간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게 된다. 편의상 시간을 흐르는 물에, 공간을 땅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김애란의 소설에는 큰 줄기의 강은 있지만 강에서 뻗어 나가는 하천이 없고, 김사과의 소설에는 평평한 대지가 있을 뿐 솟아오른 산과 움푹 파인 구덩이가 부재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들의 소설에서 세계는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한, 언제까지나 ‘닫힌’ 상태로 그려진다. 종적 상상력을 견지할 때, 태고로부터 전해 내려져 오는 삶은 지금-여기에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커다란 변화 없이 지속될 것이며, 횡적 상상력에 입각할 때 지금-여기와 다른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그녀들의 인물이 애용하는 위장의 화법이란 사실상 닫힌 세계 속에서의 절규와 다름 아니다. 세계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없는 한, 내면의 절망은 언제까지나 감춰지고 다스려져야 하며, 따라서 왜곡된 방식으로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인물이 취하는 화법이 문제적인 또 다른 까닭은 소설 속에 재현된 세계 바깥에서, 소설을 독해하는 독자가 언어를 매개로 인물의 정서와 만나기 때문이다. 즉 김애란과 김사과의 인물들이 취하는 특정한 화법으로 인해 굴절된 언어를 접할 수밖에 없는 독자는 인물의 내면에 흐르는 절망의 정서를 온전히 간파해내기가 어렵다. 그녀들의 소설이 지금-여기를 가로지르는 절망의 정서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그것과 싸우지 않고, 그것을 급하게 위무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다거나(김애란), 그것을 폭발시켜 분출해내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김사과)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지금-여기 청년세대를 가로지르는 절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소설의 두 행로는, 인물 내면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 활로를 모색하며

지금-여기 청년세대에 주목하는 최근 한국 소설 중에서도 김애란과 김사과의 소설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논평한 이 글은, 절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행로가 시작하는 곳으로부터 난관에 봉착하는 지점까지를 살펴보았다. 정리하자면 그녀들의 소설에서 세계는 변화의 기미 없이 굳게 닫혀 있고, 인물들은 암흑 속에서 절규하고 있을 뿐, 아직 절망을 이야기하기에 알맞은 화법조차 가지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는 바, 섣불리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건으로 일단락되고 마는 청년세대의 사정을 꼼꼼히 살피고, 그들의 내면을 재현하고자 애쓰는 소설의 행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절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에 묻는다. 종이나 횡, 한쪽으로 치우쳐 뻗어 나가는 상상력이 아니라, 종횡무진의 상상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지. 종횡무진의 상상력으로 견고하게 닫혀 있는 세계에 어떤 균열을 일으켜 볼 수는 없는 것인지. 그 균열 안에서 위장의 화법이 아니라 정직한 화법으로 우리 내부의 절망을 고집스럽게 응시해 보는 것은 어떤지. 모르긴 해도 심중의 절망을 언어의 그물망 안에서 포착하는 데에는 ‘성급한 승화’보다는 ‘두려운 낯섦’을 감수하는 방식, 즉 정직한 화법으로 내면을 곱씹어보는 방식이 보다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자연스레 활로가 모색될 것이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행로에도,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지금-여기 청년들에게도, 덕담으로 희망찬 새해와 밝은 미래를 주문하면서 살아볼 만한 활로가 나타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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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김애란의 소설은 작품집 『달려라 아비』(창비, 2005)와 『침이 고인다』(문학과 지성사, 2007)에 실린 단편들, 아직 작품집으로 묶이지 않은 「물속 골리앗」(《자음과 모음》, 2010년 여름호)과 「니약 따」(《현대문학》, 2011. 1),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2011)이다. 그리고 김사과의 소설은 『02』(창비, 2010)에 실린 단편들과 「더 나쁜 쪽으로」(《작가세계》, 2011년 봄호), 장편 『미나』(창비, 2008)와 『풀이 눕는다』(문학동네, 2009)를 다룬다. 본문에서 이 책들에 실린 작품을 인용할 때는 괄호 안에 책 제목과 쪽수만을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