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대학의 비전을 말한다>“재외 한국인 2·3세들에게 ‘한국’가르칠 네트워크 구축하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남철 방송통신대 총장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스퀘어빌딩 집무실에서 해외동포와 은퇴자까지 원하는 만큼 맘껏 원격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2개교’의 신념을 밝히고 있다. 김호웅기자 diverkim@munhwa.com

“1년에 1000억원만 더 줘보세요. 그러면 제가 등록금 없는 대학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내게 병사 1만명만 주면 중원을 정복해 드리겠다’는 제갈량 같은 재사의 출사표도 아니고, 이게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조남철(60) 국립 방송통신대 총장은 1월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스퀘어빌딩 집무실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장담했다. ‘반값 등록금’도 아닌 ‘공짜 등록금’이라니, 굳이 명명하자면 ‘조남철의 교육복지 선언’쯤 될까.

“우리 대학의 연간 기성회비가 1000억원쯤 됩니다. 방송대생 1명이 1년 강의를 듣는 데 내는 등록금이 약 70만원이니까요. 그런데 국가지원 예산은 전체 회계규모의 25% 수준인 400억원 내외에 불과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웬만한 사립대에 1년 동안 지원하는 예산이 1000억원 정도입니다. 이 돈만 있으면 아예 방송대 등록금을 싹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부자동네 강남구의 구청이 거액의 예산을 들여 만든 고급 ‘인강(인터넷 강의)’ 콘텐츠를 대한민국 벽지의 중·고등학교에 무료로 제공하듯, 대학 과정도 이런 식으로 하면 ‘원가 제로’의 사실상 무상교육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복지’ 아니겠습니까?”

열정에 넘친 조 총장은 이런 아이디어를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더니 의외로 야당 측에서 솔깃하며 큰 관심을 보이더라고 슬쩍 귀띔했다.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본(오리지널)의 복제본(카피)을 추가 제작하는 데 거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디지털 경제의 개념은 모바일 국민경선을 전당대회에 먼저 도입한 야당 쪽에서 더 빨리 이해할 수도 있겠다. 요컨대, 방송대는 현재 재학생 18만명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더라도 지금 인프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약간의 시설투자는 필요하겠지만 결정적인 추가 지출은 없을 것이다.

방송대는 인문과학·사회과학·자연과학·교육과학 4개의 단과대학과 원격대학 최초로 석사 학위 취득이 가능한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인과 전문직업인을 위한 재교육기관인 평생교육원과 종합교육연수원도 갖추고 있다.

원하는 과정을 선별해 학점 단위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시간제 등록제까지, 수요자 중심으로 서비스를 세분화시켰다. 원격교육 노하우를 쌓아온 교수진과 제작진, TV강의와 멀티미디어 및 웹 강의, 쌍방향 원격 영상강의를 통해 수준 높은 강의 콘텐츠를 제작·공급하고 있다. 온라인뿐 아니다. 전국 13개 지역대학, 3개 학습센터, 32개 시·군 학습관에서 원격대학의 부족한 면대면 스킨십을 채우고 있다.

조 총장은 2010년 10월 취임 후 불과 1년 조금 지난 사이에 방송대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올 1월 ‘특1호 대학’으로 승격한 것이다. 산업대, 교육대, 체육대, 해양대와 같은 특2대학 군(群)에서 홀로 ‘신용등급’이 상승한 셈이다.

그는 2010년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대학의 실질적 위상과 성취에 걸맞은 대접을 받도록 만드는 것이 제 임기 중 해결해야 할 가장 힘들고도 중요한 과제”라며 이같은 공약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류대학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는 방송대가 교육복지의 메카로 자리 잡으려면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그동안 꾸준히 설파해 왔다.

조 총장의 열정이 개척한 신규 사업은 크게 두 가지다. 방송대는 올해 미주지역 거주 한국인 교육지원을 위해 정부로부터 1차로 20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해외에는 중국 조선족을 제외하고도 80만명의 재외 한국인이 있다. 이들을 재교육하는 일은 한민족 네트워크 형성의 첫걸음이다. 방송대는 최근 중국 옌볜(延邊)대학과 중국인을 위한 성인과정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앞으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전세계 한국인들이 원하면 어디서든 방송대에 접속해 2·3세의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역사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조 총장은 “방송대의 ‘제2개교’라고 부르고 싶다”며 “제1개교땐 교육 소외자들에게 혜택을 주었다면, 이젠 해외동포와 다문화를 포함해 탈북자까지 껴안아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동포들도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야겠다는 자각이 강해진 점도 한몫했다.

두번째 사업은 ‘블렌디드 러닝’, 즉 4050세대의 2차 경력개발 교육이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 시대를 맞아 지식을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의 문제다. 올해 10억원을 필두로 벌써 국가예산 지원 30억원을 확보해 놓았다. 현재 원격교육연구소와 별도로 블렌디드 러닝 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올 3월 미디어교육연구원을 신설한다. 딱딱한 전통적 학과편제도 바꿀 예정이다.

“자유전공학부처럼 유연한 학사제도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어찌 보면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거죠. 관계법령의 손질도 필요할 겁니다. 외부 전문가와 명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하는 식으로 고용노동부 산업인력공단과 손 잡고 산학협력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은퇴자의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는, 말 그대로 ‘평생학습시대’가 열리는 거죠.”

조 총장은 또 교육과학기술부의 ‘선취업 후진학’ 정책에 따라 마이스터고·특성화고 졸업생 5만명이 직장을 먼저 잡고 나중에 공부한다면 지금의 야간대학 증설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이 부분을 방송대가 맡겠다고 나섰다.

교과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대통령 보고때 이미 이런 계획을 밝혔으며, 올 상반기 중 구체적인 시행방침도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노성열 차장(사회부)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