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코리아’ 元年>언어 교육부터 취업까지 원스톱 지원…‘완전 정착 그날까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월16일 독일 뉘른베르크 마리안로에 위치한 일링구아 어학원에서 ‘이민자 통합코스(Intergration Course)’에 참여하는 18명의 이민자들이 기초 독일어 수업을 받고 있다.

“자 오늘 독일어 수업에서는 화법조동사(modalverben)의 과거형에 대해 알아보겠어요. 조동사 konnen, mussen, durfen, wallen이 ich, du, er, sie, es, wir, ihr 각 인칭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 빈칸을 채워 봅시다.”

지난 3월16일 오후 독일 뉘른베르크 마리안로에 위치한 일링구아 어학원 ‘이민자 통합코스(Intergration Course)’ 교실. 이곳에서는 18명의 ‘늦깎이 독일어 수험생’들이 기초 독일어 문법을 배우면서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지난해 5월 독일인 남편을 따라 독일로 이민을 왔다는 폴란드인 하미 다투키(35)도 그리스, 터키, 프랑스, 스페인, 튀니지, 일본 등에서 온 다인종 학우들과 함께 조동사 과거형 표에 빈칸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이미 200시간의 언어수업을 받아 통합코스 3단계에 진입했다”며 “독일사회가 요구하는 언어 수업을 잘 이수해 유창한 독일어 실력을 뽑내며 고향에서의 전공을 살려 화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에 정착하려면 독일어와 독일사회를 배워라.’ 다문화 시대 독일의 사회통합정책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하다. 이민자들이 자발적으로 독일사회에 대한 통합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통합정책으로 과거 혈통을 기반으로 대표적인 민족주의 국가로 손꼽혔던 독일은 현재 인구 20%가 이민 배경을 지닌 다문화 시대로 바뀌었다.

통합코스 코디네이터 프리즈는 “결혼 이주자뿐만 아니라 독일 이민을 원하는 외국인들은 독일어 수업을 포함한 사회통합 코스를 이수해야 한다”며 “사회통합의 의무를 이민자들에게 부여하는 만큼 독일 정부 또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 독일 다문화정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1950년대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가스트 아르바이터(Gastarbeite·귀화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될 때만 해도 독일은 ‘이민을 허용하되 일정기간만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들의 장기체류로 이민 2, 3세들이 독일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됐고, 세대가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 갈등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독일은 지난 2005년 이민자들도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의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이민법’을 제정했다. 2010년 사회통합코스에만 2억1800만유로(약 3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일의 적극적인 사회통합정책은 동남아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나 중도 입국가정 등의 이주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사회통합정책은 독일어 교육에서 출발한다. 이민자들이 현지 언어에 유창하면 그만큼 현지인들과의 간격도 좁혀지게 된다. 또 독일사회의 교육, 노동, 복지의 혜택도 한결 편하게 누릴 수 있고 직업을 얻을 기회도 많아진다. 독일이 지난해 언어코스에 투입한 예산은 224만유로(약 2500억원)로 이민자들 10만여명이 통합코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독일 역사, 문화 등의 배경지식을 제공하는 오리엔테이션 코스를 포함해 의무 수업만 900시간에 달하며 문맹, 청소년, 여성 등을 위한 특별 언어 지도까지 더하면 최대 1200시간으로 늘어난다.

교육을 이수한 이민자들은 공인시험을 통해 독일어 능력을 인증받을 수도 있다. 스페인 출신 이민자 알베르트로(25)는 “언어 프로그램을 훌륭한 성적으로 이수해 좋은 직업을 구할 예정”이라며 “지원받는 만큼의 성과물을 내 독일사회에서 하루빨리 자리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의 다문화 사회통합정책은 최근 수혜자 중심의 ‘맞춤형 지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민난민청은 전국에 480곳의 단체를 이주·이민상담센터로 지정해 다국어가 가능한 1100여명의 상담가를 배치했다.

뉘른베르크 프랑켕가에 위치한 상담센터의 한스요그 오스펠 상담가는 “이민자들의 정착을 위한 기본적인 관공서 업무 도움을 비롯해 언어, 진학, 취업, 결혼, 가족, 건강 등의 문제까지 상담한다”고 말했다.

특정 수혜층을 겨냥한 통합 프로젝트도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뉘른베르크 지역의 통합 프로젝트인 ‘NEST’는 이민자들에게 자녀 교육에 대한 정보를 제공 이민 2세들의 학업 성취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수혜자로 시작해 현재는 NEST의 교육자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베트남 출신 쩐타이란(여·49)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방법만 60여 가지에 이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 교육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아이를 가르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민 2세들의 학업성취율이 독일 학생에 비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민난민청 통합국 관계자는 “독일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뒤늦게 다문화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는 다문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라며 “독일은 다문화를 사회문제가 아닌 도약의 찬스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뉘른베르크(독일) = 윤정아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