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이 서울 중구 충무로 협회 집무실에서 생명보험산업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능동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외환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의 풍파를 뚫고 한국 경제가 지난해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각종 대내외 리스크(위험) 요인은 잠시의 방심도 허용치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난제 중 하나로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게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다. ‘100세 시대’의 도래로 압축되는 고령화 사회의 진전은 또 하나의 크나큰 도전과제다. 정부 재정으로 공적연금을 통해 보호막을 치기에는 갈수록 재정의존도가 커지는 추세를 볼 때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 생명보험협회 집무실에서 열린 김규복(61) 생명보험협회장과의 인터뷰는 저출산·고령화가 첫 화두에 올랐다.
“베이비붐(1955~1963년 출생) 세대가 벌써 은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후생활 대책 등 체계적인 대책은 미흡해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은 출산율 감소, 노령인구 증가로 2049년쯤에는 고갈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등 많이 부족합니다. 노후대책을 개인에게만 맡겨 둬선 안 돼요. 적정한 연금소득 확보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 정부에도 중요한 과제 아닙니까.”
김 회장은 이 과정에서 민간과 정부의 유기적인 협조를 위한 준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생보업계가 민간 연금시장에서 연금저축, 종신연금보험 등을 통해 개인 차원의 노후 준비에 일익을 맡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은퇴 후 평생 보장받을 종신연금 확대가 절실한데 이를 위해서는 개인연금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상기시켰다.
“기획재정부에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연금시장 활성화를 논의 중인데 올해 세제개편 때 저희 업계 의견이 적극 반영되도록 추진할 계획이에요. ‘연금시장 활성화 방안’연구용역과 ‘베이비붐 세대 노후 준비 실태조사’ 등의 연구 결과를 제때 제공할 겁니다.”
고령화는 업권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위기감에 싸여 있는 생보업계 입장에서는 어쩌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터다. 김 회장은 “연금보험, 종신보험, 장기요양보험, 장기간병보험 시장을 크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연금보험 분야만 해도 생보사만이 고령화 시대 노후대비에 가장 적합한 종신연금을 취급할 수 있는 유일한 업권이란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는 생보의 영역을 넓히자는 단순한 발상이 아니라 은퇴시장에 준비 없이 내몰리는 이들이 없도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직접 회원사를 모두 방문해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다. 결과는 어땠을까. 전반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게 위축돼 있음을 체감했다고 한다. 유럽발 재정위기 영향, 9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로 인한 소비 침체, 업권 간 경쟁 격화가 그 배경이었다. ‘빅 3’ 생보사의 해외점포가 지난해 16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해외 진출 수익기반도 미미하다. 어떤 CEO는 다소 과장을 섞어 “요즘이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가 아닌가 싶다”며 김 회장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실었다. 영업환경이 과거보다 열악해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단다.
“사실 연금시장만 해도 당초 생보사의 고유 영역으로 알고 있었는데 은행, 증권까지 똑같이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으니 젖을 주지 않는다’고, 보험업의 업권 스타일이 비교적 점잖다 보니 정부나 국민이나 보험에 별반 관심을 쏟지 않는 것 같더군요. 대형 생보사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니, 중소보험사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정책당국자들에게 작은 것,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요구하려고 합니다. 협회장이라도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장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업계와 함께 호흡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어요. 해외진출도 애로사항이 뭔지 철저히 조사하고 해당 국가의 진입장벽 해소를 위해 정부가 외교적인 노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저희가 뒷받침할 계획입니다.”
보험업 성장의 핵심에 대한 김 회장의 철학이 궁금했다. 아직까지 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그리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험소비자보다 판매자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기본 불신부터, 잦은 보험분쟁과 소송도 보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변액연금보험 상품의 실효(實效)수익률 비교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란도 부담거리다.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효익이나 총자산 442조원, 수입보험료 86조6573억원에서 알 수 있듯 국민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에도 불구, 부정적 인식이 높은 점은 생보업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어 보였다. 김 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집무실 벽면을 가리켰다. 액자 2개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취임 후 직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했다고 한다. 작은 액자에는 ‘생명존중(生命尊重)·보험복지(保險福祉)’, 또 다른 액자에는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之後彫也)’가 적혀 있었다. ‘날씨가 추워진 뒤라야 송백이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생명존중·보험복지는 저희 협회 회훈격으로 공모한 것인데 생명의 위대함을 높이 존중하며, 보험을 통해 인간다운 삶과 복지를 구현하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세한연후~’는 큰 어려움을 당한 후에야 보험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는 비유로 적절하다고 판단해 집무실에 두고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이런 보험의 원래 모습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보험가입자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얻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치부한다거나 재산 증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위기 극복의 큰 원천이 되고 수백조원의 자금이 국가경제를 떠받쳐 주고 투자재원으로 쓰이는, 이렇게 좋은 산업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전반적으로 저평가돼 있거든요. 신뢰를 얻는 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보험사들이 1차적으로 자율책임을 갖고 내부운영시스템을 정비하며 업그레이드시켜 나가야 합니다. 모집단계에서부터 강제나 강압적 권유가 아니라 꼭 필요한 위험보장수단이란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줘야 합니다. 20~30년 가는 긴 수명을 지닌 산업, 상품이잖아요. 저희 업계가 소비자보호와 사회공헌활동을 더 확대하고 홍보해 생명보험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를 개선하려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실제 생보업계는 2027년까지 20년간 1조5000억원을 출연하는 내용의 업계 공동의 대규모 사회공헌사업을 펼치고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 지원, 저출산 해소 및 미숙아 지원, 저소득 치매노인 지원, 초·중·고 대학생 장학사업, 사회 소외계층 지원 등이 망라돼 있다. 올해는 새로 대학생 학자금 부채상환 지원사업도 진행한다.
보험업계의 고민 중 하나는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보험사기의 근절이다. 의료기관, 전문브로커 등이 연루된 조직적·계획적인 범행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10년에만 3500억원 규모에 5만5000여명이 보험사기로 적발됐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란 게 업계의 판단이다. 보험사기는 결국 업계의 이미지를 흐리고 보험금 누수로 이어져 수익기반을 해치며 다시 선의의 계약자 피해로 이어진다. 업계 보험사기 얘기가 나오자 목청 큰 김 회장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단호해졌다.
“별로 죄의식 없이 보험금을 최대한 타내려는 생각 역시 보험사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현재 보험사기에 대한 처벌은 형법상 사기죄를 적용,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유형화하고 일반 사기범죄와 구별해 처벌 수준을 강화해야 합니다. 금융위원회 등 감독당국과는 보험업법 개정안에 보험업계 업무 종사자가 보험사기를 저질렀을 경우 처벌할 근거를 두기 위해 협의 중입니다. 일반 국민, 소비자가 보험사기를 했을 때보다 더 가중하게 처벌하기 위한 것이죠. 손해보험협회와는 공동으로 보험사기 연구용역을 통해 보험사기 처벌규정 강화 필요성과 조사권 등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입니다. 현재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보험범죄 전담기구가 전국으로 설치되고 상설 조직화되면 보험범죄가 보다 빨리 근절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최근 업계 관심사안으로 5%가량 인상 요인이 생긴 것으로 알려진 생명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는 “인상·인하 요인을 감안해 생보사들이 자율로 결정하겠지만 정부 당국의 물가인상 억제, 서민생활 안정 추진 등을 고려해 인상을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 이민종 차장(경제산업부) horiz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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