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경제정책은 물흐르듯 해야… ‘강요’하면 부작용 불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회장 집무실에서 있었던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경제영토’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국내기업 수출 전망, 9분기래 최저’ ‘대(對)중·유럽연합 수출, 4개월째 쌍끌이 감소’….

지난주 문화일보에 게재됐던 수출 관련 기사의 주요 제목들이다. 사실상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에 있어 유럽발 재정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재앙과도 같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 현실에서 글로벌 시장 위축이라는 ‘외풍(外風)’은 몇 배의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는 세계 경기회복 둔화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과 역풍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클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경고가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한덕수(63) 한국무역협회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로 향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고위관료 출신으로 이 ‘엄동설한(?)’에 무역협회장을 맡아 마음고생이 크겠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5개월여 동안 수출현장을 누빈 그는 한국경제에 대해 ‘걱정’보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그가 바라보는 한국경제 희망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 걸까.



# “무역협회장 업무는 내게 있어 중요한 ‘도전’”

한덕수 무역협회장이 취임한 건 지난 2월22일.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으면서 무역협회장 취임 후 5개월이 지난 소회를 첫 질문으로 던져봤다.

“취임 후 지난 5개월 동안 세계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성장 전망치가 떨어지고 교역여건이 나빠지다보니 아무래도 한국경제가 받는 부정적 영향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고요. 세계 경제가 자꾸 나빠지다보니 지난 5개월 동안 무역협회장으로서 결국 해외시장을 더 닦고 넓혀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한 경제영토 확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과 이해도 더 필요해졌고요. 또 한편으로는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국무총리 출신 인사가 무역협회장을 맡은 건 남덕우 전 총리에 이어 2번째다. 고위 관료 출신으로 무역협회장을 수락한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도전’으로 표현했다.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현 시점에서 우리가 세계를 향해 나가려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역협회장으로서 한국경제가 해외로 더 뻗어나가도록 하고,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일이 저한테는 도전적이고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이들이 한 회장을 ‘FTA 전도사’라고 일컫듯이, 그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힘도 FTA를 통한 경제영토 확장에서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FTA가 없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했을 겁니다. FTA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는 차이가 커요. 일본도 FTA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예요. EU와 일본 간에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잖아요. 다행히 우리는 미국, EU 등 주요 국가들과 FTA를 맺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들은 우리 국민의 지지를 받아가면서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FTA 기대효과를 잘 알리고 지지를 확대해가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 “한·중 FTA는 한국경제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

FTA가 인터뷰의 화두로 등장한 김에 이를 둘러싼 몇 가지 논란을 질문으로 던져봤다. 먼저 한·중 FTA. 최근 2차 실무협상을 끝낸 한·중 FTA를 놓고 농민단체 등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에 대한 한 회장의 생각을 물었다.

“중국은 현재 우리나라의 제일 큰 교역파트너이자 우리 중소기업과 가장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FTA라는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제1 교역국과 제1 투자대상국 간 교역이 좀 더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한·중 FTA는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중국은 가까이 있고 중국의 낮은 임금 수준 때문에 중국 농산물의 경쟁력이 상당히 있기 때문에 예민한 부분은 세밀히 따져서 한·중 FTA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이런 문제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야 해요. 물론 분야별로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우리의 노동집약적 산업엔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FTA로 관세가 없어진다고 해서 추가적으로 엄청나게 구조조정 여파가 밀려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섬유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수출이 반으로 줄었고 섬유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도 반으로 줄었지만 대신 고급화 쪽으로 갔어요. 농업부문도 좀 더 세계를 보고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 농업 하시는 분들이 중국에 진출해서 거기서 농업도 하고 거기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경쟁하고 그런 제품을 우리쪽으로 가져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경제영토 확대는 우리가 갈 길입니다. 우리가 안 하면 다른 나라가 먼저 해요. 그러면 우리가 어려워집니다. 선제적으로 하면서 어려운 점은 좀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다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한EU FTA가 1주년을 맞았지만 대(對)유럽 수출보다는 수입이 더 늘어 일각에서 FTA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는 데 대해서도 슬쩍 물어봤다. 그는 답변 과정에서 세세한 수치 하나까지 메모 없이 정확히 꾀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FTA 그 자체에 대한 효과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말부터 올해 3월 말까지 EU로의 수출은 12% 줄었고 수입은 13.5% 늘어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FTA 영향을 받는 주요 품목들의 대 EU 수출은 16.5% 늘었어요. 대 EU 수출이 줄어든 이유는 재정위기로 촉발된 EU의 경제상황이 그만큼 어렵고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에요. 우리 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건 FTA에 의한 가격경쟁력도 있지만 EU의 경기와 소득도 굉장한 영향을 미치거든요. 지금 상태로 가면 우리나라의 대 EU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지만, FTA 영향을 받는 수출품목만 보면 16%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셈이에요. 일부 논란이 있는 유럽산 소비제품 가격의 경우 우리가 많이 수입하고 있는 9개 품목 중 6개 품목은 값을 내렸고 나머지 3개 품목은 유통구조 때문에 아직 영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는 “분명한 건 앞으로 유럽경제가 회복되면 FTA의 긍정적 효과는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모든 경제정책은 물 흐르듯 흘러가야”

화제를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기업정책과 관련된 쟁점으로 돌려봤다. ‘경제민주화’ ‘기업규제 강화’ ‘대·중소기업 상생’… 최근 정치권과 경제계 안팎에서 격한 논쟁이 펼쳐지는 사안이어서인지, 이에 대한 한 회장의 답변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우리나라 수준의 경제를 갖춘 상황에서는 경제관련 정책을 결정할 때 두 가지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국제경쟁 아래 있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그 정책이 지속가능한 것이어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최근 경제민주화가 쟁점이 된 건 한국경제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집중돼 원활한 시장경제의 작동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를 실패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은 독점과 과점입니다.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하면 그건 시장경제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 어떻게 시장경제를 작동하게 만들고 변화시키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는 정부가 만들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기업과 국민이 해야 되는 부분도 있어요. 한국경제가 지나치게 소수에 집중돼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는다고 하면 시장내 플레이어를 많이 만드는 것도 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중소기업 육성정책이나 기술개발 지원책, 수출 중소기업 지원책 강화 등으로요. 이를 통해 시장을 더욱 활기 띠게 하고 민주적 시장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봐요.”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평소 글로벌 스탠더드와 자유 시장경쟁을 강조해온 그의 언행을 감안할 때, 올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분히 정치논리가 개입돼 확산되는 경제민주화 논란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한 회장의 진의가 궁금해 더 파고들어갔더니 그의 답변이 이어졌다.

“경제민주화는 특정 세력을 때리자는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들고 시장경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다같이 노력하자는 취지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더욱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행동을 했을 때는 그 결과가 자신들에게 더 큰 불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하고, 정부가 더 이상 뒷감당을 해주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사인을 줘야 해요. 경제민주화를 위한 방법은 좀 더 시장친화적인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이 같은 취지에서 저는 반드시 필요한 게 경제 리더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봅니다.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구는 데 대기업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 대기업들이 국가와 정부의 큰 혜택을 받아온 것도 사실 아닙니까. 초기에 경쟁도 제한해줬고, 세제혜택도 줬고, 은행대출에 혜택도 줬고… 대기업들이 그동안 많은 혜택을 입었던 만큼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욱 많은 대기업과 오너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확산시켜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질문을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대기업 순환출자 금지 등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구체적인 기업규제 강화책으로 이어갔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모든 경제정책은 만들기 전에 우선 국제경쟁력을 봐야 합니다. 이 정책이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건 아닌지, 대안이 있는 건지, 친시장적인 건지 따져봐야 해요. 정책은 물 흐르듯 흘러가야 합니다. 경제 플레이어들이 경제원리나 본능상 아주 하기 싫어하는 것을 제도로 강제화해 억지로 끌고가려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부작용과 회피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출총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출총제는 대기업이 순자산의 일정비율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인데,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자기 회사에 별도 부서를 만들어서 하면 되는데 출총제 규제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것은 결국 출총제가 원하는 경제력 집중을 해결하지 못하는 거 아니겠어요. 순환출자 금지 역시 기업들의 자율선택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화돼 지분이 매물로 나온다면 그 지분을 외국자본이나 국내의 분산된 자본이 인수하게 될 텐데 그 실익을 따져봐야 합니다. 오너십이 확실하지 않은 회사가 효율적일 수 있느냐도 문제가 될 겁니다.”

한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 문제를 너무 대척적인 관점에서 보는 건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소기업 관계는 서로 없으면 못사니 서로 잘되게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다만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선 더욱 많은 강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과 청년은 한국경제의 희망”

그와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최근 ‘기업가 정신’ 실종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운을 띄웠더니 그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우리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것이다.

“사업 계속하기 힘든데, 중간에 사업 접고 자산 팔아서 이자 받아먹으며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끼기에 그런 부류는 극히 일부예요. 경제여건이 어렵지만 무언가 새로운 걸 창업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한국경제는 병아리가 계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막 나오려는 그런 단계인 것 같아요. 이런 과정에서 도전정신과 기업가 정신은 무척 중요합니다. 이런 도전에 나서는 기업과 기업인들을 좀 더 따뜻하게 봐주면 어떨까요. 물론 기업들도 더 투명하게 경영하고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돼야겠지만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역경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데 대해서는 높게 평가해줘야 합니다.”

그는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희망 중에 가장 큰 경쟁력은 역시 젊은이들인 것 같아요. 미국 대사로 있을 때도 한국 친구들을 보면 ‘일당백’이에요. 무엇이든 능숙하게 척척 해내는 모습이 넘버원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지만 이런 과정에 젊은이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사교육비 문제 등 일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OECD에서도 한국의 인적자원 경쟁력을 인정했듯이 교육은 우리의 큰 희망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 회장은 “좁은 우리나라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며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넓게 보고 세계를 무대로 삼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리스크 테이킹하면서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최근 개원한 19대 국회에 대한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앞으로 4년, 새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 5년은 한국 경제에서 계속 번영하느냐, 아니면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고꾸라지느냐 하는 걸 명확하게 구분짓는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시점이에요. 한국 사회가 물 흐르듯 발전하게 하는 입법을 추구해줬으면 합니다. 법으로 규정해 강제로 사람들의 경향과 본능을 다른 쪽으로 가게 하면 그에 따르는 엄청난 후유증과 변칙적 방법이 생깁니다. 경제관련 법률 제정 시에는 단기적인 효과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좀 더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룰 수 있느냐 하는 데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노동관련 법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외국인을 만나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할 때 가장 겁내는 건 아직도 노동문제입니다. 한국의 노동정책이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지, 노동시장 내 준법 정도는 어떤지 등은 투자결정에 중요한 기준점이 됩니다.”

한 회장은 “우리나라가 지난해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는데, 무역 2조 달러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면서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한국경제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병직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