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빼앗아간 유물 돌려달라” 서구에 외교적 압박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터키 영토인 고대 페르가몬 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180년경의 제우스 대제단이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복원, 전시돼 있다. 헬레니즘 건축의 대표작으로 높이가 9.66m에 달하며, 이오니아식 원주 기둥과 그리스 신화를 담은 장식조각이 특징이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50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동서양의 융합,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으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 터키.

그러나 수많은 터키 유물들은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대국으로 유출됐다. 최근 터키 정부가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들에 터키 유물 반환 요청 목소리를 강경하게 내면서 외교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월30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터키 정부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노버트 시멜 컬렉션 중 황금 잔과 고대 조각상 등 터키 유물 18점의 반환을 요청했다. 오스만 무라트 시슬리 터키문화유산박물관 사무국장은 “우리는 이 보물들이 아나톨리아의 것으로, 도굴꾼과 밀수업자들에 의해 빠져 나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에 토마스 캠벨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은 “유물들의 출처관련 서류는 없지만, 이것들이 불법 유출된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고 반박했다.

터키는 오스만제국 시절이던 지난 1906년 국가유물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유물관리법을 근거로 유물 반환에 힘쓰고 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는 16세기 오스만 제국 10번째 술탄 셀림 2세의 모스크에 쓰였던 청색 타일 ‘이즈니크 타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 런던 대영 박물관에는 터키 큐타야 타일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 미국 폴 게티 미술관, 컬럼비아대 도서관 등과도 유물 분쟁을 벌이고 있다.

터키 문화는 기원전 3000년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헬레니즘 문화를 거쳐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호령하는 거대한 나라들의 흥망 속에서 발전했다. 고대 스핑크스부터 청동, 금동유물에 이르는 진기한 보물들이 탄생했다. 그 후 세워진 터키공화국은 오랜시간 경제·정치적 위기를 겪어왔지만, 현재에는 유로존 위기에도 홀로 승승장구하는 등 경제적 성장을 이루면서 유물 반환에도 더욱 적극 나서고 있다. 급성장하고 있는 터키의 경제 성장률은 2010년 9%에 이어 지난해 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경제 전문가들은 2017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6.7%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터키 예술품 시장도 급속히 부흥하면서 예술품에 대한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미술 시장만 해도 2005년 2500만 달러에서 2011년 1억5000만 달러 규모로 크게 확대됐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본가들이 잇달아 박물관, 미술관과 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고대 유물을 확보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졌다.

터키는 유물 반환을 끌어내기 위해 유물을 활용한 압박전도 동원하고 있다. 지난 9월 펜실베이니아대 고고학 박물관은 터키에 고대 트로이 24개 공예품을 무기한 임대하고, 터키정부에 문화재 공동발굴 작업을 진행하기로 약속받았다. 프로이센 문화재보호재단의 헤르만 파징거 관장은 “터키는 강압적 외교를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7월 페르가몬 박물관이 스핑크스상을 터키에 반환한 것은 터키가 주요 고고학 프로젝트를 거부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15년 터키 하투사에서 독일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4000년 전 고대 히타이트제국의 스핑크스 조각상 한 쌍은 그 중 한 개만 1924년 터키로 반환됐다. 이에 터키는 독일이 100년 넘게 벌이고 있는 하투사 문화유적발굴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겠다고 압박했다.

터키는 법적 소송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터키는 지난 1993년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상대로 낸 기원전 6세기 크레수스왕의 브로치 반환 소송에서 승소했다. 2006년부터는 전국 박물관에 약탈 문화재 목록을 신고토록 지시하고, 법적 소송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외교적 노력만으로 보스턴 미술관의 헤라클레스 조각상을 반환받았다.

터키정부의 점점 강력해지는 대응에 터키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들은 긴장하고 있다. 일부는 터키가 일종의 문화적 협박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들은 현재 터키 유물이 각광받는 것도 터키의 유물을 제대로 복원하고 잘 보존해 왔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캠벨 관장은 “우리가 그동안 유물들을 잘 보존해 많은 이들이 터키 유물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이로 인해 터키 관광, 유물 발굴 프로젝트들이 발전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키 역시 유물 약탈의 가해자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파징거 관장은 “터키도 중동 지역의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도덕적 비난을 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면서 지난 1887년 레바논에서 발견된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또한 지난 1992년 터키 총리가 루마니아에 15세기 몰도바의 군주 스테판 대제의 칼을 돌려주기로 약속했지만 이스탄불 박물관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유물 반환 논쟁은 심각한 외교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파징거 관장은 “터키가 독일을 시시한 도둑으로 몬다면 양국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면서 “터키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데도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의 약탈문화재 전문가 마크 마수로브스키는 “국제적 유물 약탈 문제를 조정하는 국제기구가 없어 터키가 강경한 외교에만 의존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오스만제국의 법을 외국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는 약탈 문화재 반환 규정이 있지만 이는 1970년대 이후에 거래된 문화재에만 적용된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