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소설 ‘BANK’>(251) 제5부 부국(富國)의 꿈, 중앙은행 : 서장 단독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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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6월 3일, 걱정하던 일이 터졌다.

군중이 특위 사무실로 몰려온 것이다. 그들은 반민특위에 남로당의 프락치가 있다며, 특위 해체를 목청 높여 외쳤다. 특경대를 비롯한 반민특위 전 직원이 이틀을 꼬박 특별 경계 근무를 섰다.

늦은 밤, 조사관들은 퇴근해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사무실을 떠나기 싫었지만 윤남수가 팔을 잡아끌었다.

“밥은 먹어야지. 가자고.”

윤남수를 비롯한 조사관 두 명과 함께 돼지껍질을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윤남수가 가볍게 한 잔씩만 하자며 술을 시켰다.

결론은 암담했다. 이 정도에서 친일파 색출을 멈추자는 주장이 정부와 국회에서 힘을 얻는 중이라고 했다. 법으로 보호받지 못했다면, 반민특위도 벌써 해체하려고 덤볐을 것이다.

조사관들과 헤어져 반민특위 사무실로 돌아왔다. 불을 켜지도 않고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곧 짧은 꿈을 꾸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꿈이었다.

화장실도 못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을 받고 돈을 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옆자리 직원들은 나가서 담배도 피우고 잡담도 한 후 돌아왔지만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내가 잠시 자리를 뜨려고 하면 내 앞으로 고객이 긴 줄을 섰다. 내가 엉덩이를 조금만 들어도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음이 어느 순간 달그락거리는 문소리로 바뀌었다. 나는 소리가 난 은행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거기엔 문이 없고 벽뿐이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이 은행엔 입구도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밀려들었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이 어디를 통해 출입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돈과 통장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는 사이 익숙한 얼굴이 사라지고 낯선 얼굴이 등장했다. 그때 갑자기 굉음과 함께 정면 벽 전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 간 벽이 은행 안으로 무너지면 고객이 크게 다칠 것이다. 나는 곧장 뛰어나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구두가 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두 발목에 잔뜩 힘을 실어 들어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시도하려는 순간, 벽이 무너져 내렸고, 나는 꿈을 깼다.

“조사관님! 1층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특경대원이 곤한 잠을 깨워 미안한 듯 서 있었다.

이 시간에 나를 만나러 올 사람이라면? 혹시 왕대인인가?

바삐 계단을 통해 1층 출구 쪽으로 내려갔다. 사내 둘이 다가섰다.

“장대한 조사관님이십니까?”

“그렇소만……. 누가 보냈소?”

“왕대인 어른이십니다.”

“무슨 일이오?”

“장철호 은행장 아시죠? 지금 위독하십니다. 장 조사관님을 찾으십니다.”

“뭐라고?”

나는 급히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내 하나가 앞장을 서고 나머지 사내는 뒤따랐다. 스산한 새벽 거리를 50미터쯤 바삐 걸었다. 거기 자가용 한 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깜빡이를 켰다. 불길한 예감이 뒤통수를 쳤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장철호가 위독하면 왕대인이 곧바로 전화를 하지 사람을 보낼 리 없다. 앞서 걷던 사내가 되돌아섰다.

“왕대인이 보냈다고 했소?”

“그, 그렇습니다.”

“통화하고 싶소.”

“병원으로 급히 가셨을 겁니다.”

“어느 병원이오? 특위 사무실로 돌아가서 전화를 해봐야겠소.”

“그, 그게…….”

나는 머뭇거리는 사내들을 몰아세웠다.

“너희들 누구야? 누가 보냈어? 윽!”

옆구리가 따끔했고 파고드는 금속이 싸늘했다. 뒤따르던 사내가 단검으로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부딪쳤다.

암살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