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설 발표까지 30년간의 고뇌와 갈등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 / 데이바 소벨 지음,장석봉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스토리텔링의 대가’인 저자는 책에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획기적 발상을 떠올린 코페르니쿠스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16세기 ‘신들의 과학’이 ‘인간의 과학’으로 바뀌는 순간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서술했다. 딱딱한 과학 분야의 전기지만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문체 때문에 문학처럼 즐길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의 역사를 뒤바꾼 지동설을 처음 구상하고도 거의 예순살이 될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 개혁이라는 대담한 계획을 수십 년에 걸쳐 틈날 때마다 키워갔다. 하지만 그는 매우 신중했다. 세상의 비웃음을 살까봐 두려워했다. 자신의 생각을 알린 것도 동료 과학자 몇 명뿐이었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발표를 오랫동안 미룬 탓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그의 책이 인쇄되어 나왔을 때 코페르니쿠스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1543년이 돼서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가 발간돼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혁명’의 순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책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구상하고 이를 발표하기까지 교회와의 갈등, 성직자이자 과학자로서의 고뇌를 담았다.

책은 중세 과학과 르네상스 시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구상하고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면서 30년 전쟁과 흑사병으로 피폐해진 중세 유럽의 풍경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저자는 이 책으로 전작인 18세기 경도 측정법이 완성된 막전막후를 되살린 ‘경도 이야기’, 갈릴레오 딸의 편지를 통해 갈릴레오의 삶을 추적한 ‘갈릴레오의 딸’과 함께 16∼18세기 과학혁명 3부작을 완성했다. 이로써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된 과학혁명이 케플러, 갈릴레이, 핼리, 뉴턴까지 이어지는 근대 과학의 완성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30여 년 전 지동설을 처음 떠올리고 20여 년 뒤 원고를 완성했지만 종교계 탄압이 두려워 공개를 꺼렸던 코페르니쿠스가 끝내 입을 연 계기는 뭘까.

저자는 코페르니쿠스의 젊은 제자 레티쿠스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편지와 사료 등을 토대로 그가 스승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뒷얘기를 치밀하게 추적해나간다. 코페르니쿠스는 레티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에게 행성의 진정한 질서를 알려주겠네. 이전의 모든 비틀림을 해결한 하늘 위의 기계가 한 일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하찮은 결함에 대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자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네.”

당초 희곡 형태로 쓴 초고에 과학 이론을 꼼꼼히 덧입혀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상상이 교차하는 책으로 펴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