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윤 선임기자의 스포츠 인사이드>‘관중 타령’ 비인기 종목, 피겨에서 배워라

1985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그랑프리 마스터즈 탁구대회’가 열렸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속공수였던 중국(당시는 중공이라고 표기했습니다)의 장자량(江加良)을 비롯한 남녀 16명 씩의 강호들이 출전했지요. 한국에서 국제탁구대회가 열린 것은 1964년 아시아선수권, 1980년·1982년의 서울오픈에 이어 세 번째였는데 그 중 그랑프리 마스터즈가 가장 수준 높은 대회였지요. 상금도 월드컵(5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4만5000달러로 당시에는 거액이었습니다.

탁구협회는 모처럼 열린 이 수준 높은 대회가 탁구 인기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소형 승용차 두 대를 포함한 많은 경품을 내걸고 관중동원에 나섰습니다. 책정한 입장료는 5000원. 지금이야 큰돈이 아니지만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초봉이 30만 원 내외였던 당시로는 적잖은 돈이었습니다. 샐러리맨의 인기 점심 메뉴였던 설렁탕이 2500원, 꼬리곰탕이 5000원 할 때니까요.

그러나 협회의 기대와는 달리 관중석은 텅 비었습니다. 곧바로 다음 날부터 입장료를 50% 파격 인하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경품으로 프라이드가 두 대나 걸렸음에도 파격 할인된 입장료를 내고 제 발로 들어 온 관중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내 탁구대회에는 입장료가 없습니다. 새해 첫 주에 대구에서 국내 최고 권위의 제66회 종합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관중석에 앉은 선수들을 뺀 순수 관중은 하루 200명이 채 안 돼 보였습니다. 그나마 대구에는 생활체육 탁구 인구가 많아 “관중이 제법 들어왔다”고 탁구인들은 반가운 표정이었습니다.

탁구종합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기간에 피겨종합선수권대회가 서울 목동링크에서 열렸습니다. 피겨의 경우도 그동안 관중보다는 선수 가족이나 코치, 관계자들만 경기장에 나오기 때문에 입장권이라고는 팔아 본 적이 없답니다.

하지만 ‘KB금융그룹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3’이라고 명칭부터 변화를 준 이번 대회에서는 추가 판매 분이 10분 만에 다시 매진되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오랜만에 김연아가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 해외에서 취재 신청까지 들어오는 등 관심이 높아지자 입장권 판매를 생각하게 됐다는데, 좌석에 따라 1만5400원, 1만9800원 등으로 결코 싼 가격이 아님에도 매진되는 빅 히트를 치게 된 것이죠. 암표 가격이 5만 원을 넘었다는 후문도 들립니다.

대표적인 비인기종목의 하나였던 국내 피겨의 성공 요인은 ‘스타 마케팅’ 덕분입니다. 피겨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더라도 김연아 하나만을 보러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오는 것이 요즘 세태입니다. “원래 우리 종목은 관중이 없어”하는 비인기 종목들, 피겨의 스타 마케팅을 눈여겨 봐야할 것 같습니다.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