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의 서울 戀歌>서울의 ‘멋·맛·색’… 추억의 파노라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사석원의 ‘종로’.

강렬한 선과 색의 동물그림으로 인기 높은 ‘스타화가’ 사석원(사진) 씨는 대대로 서울서 나고 자란 서울토박이다. 1960년생, 올해 53세의 그는 신당동에서 태어나 홍제동, 면목동, 망우리에서 성장했다. 광화문에서 그림을 시작했고 장충동, 아현동, 동교동, 논현동에서 젊은 날을 보냈다. 1년반 파리 유학 후 귀국한 뒤 20년여 방배동에 살면서 오래된 맛집과 술집 탐험을 즐기는 자칭 ‘오리지날 서울깍쟁이’다.

그는 지난해 문화일보의 ‘사석원의 서울연가’(7월 6일∼11월 2일)시리즈를 통해 특유의 해학적인 그림과 맛깔스러운 글로 서울의 맛과 멋, 풍류와 인생을 되살려냈다. 그가 놀라울 만큼 세밀한 기억력을 발휘해 풀어낸 서울이야기는 비슷한 시대를 경험한 중장년층으로부터 “바로 나와 내 또래의 이야기”로 호평을 얻었다.

문화일보의 기획연재 ‘사석원의 서울연가’가 책과 전시로 재공개된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의 롯데갤러리는 17∼28일 신년 첫 기획으로 문화일보에 연재됐던 사 씨의 서울 그림을 발표한다. 이번 전시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광장시장, 가로수길, 대학로를 비롯해 대폿집 여주인, 이중섭 화백, 중광 스님과 청량리 집창촌 아가씨 등을 담은 종이원화 40여 점 외에 캔버스 그림도 선보인다.

샘터가 펴낸 ‘사석원의 서울연가’는 신문에 연재된 18회 분량의 글과 그림에 ‘못다한 연가’편이 더해져 총 19편으로 구성돼 있다.

“잊어져 가는 서울의 아스라한 풍경과 그 무렵 청춘의 내 모습을 담았습니다. 옛일이 풍경화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내가 경험한 그때 그 시절 서울의 풍속화라고 생각하며 내밀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울남자’ 사석원 씨가 일기 같은 옛 기록 없이 온전히 기억만으로 복원한 서울풍경에는 맛과 멋 그리고 색(色)과 관련해 다채로운 인물, 사건과 공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울토박이 화가는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서울서 청춘을 보낸 사람에게 “그땐 그랬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듯 ‘사랑과 욕망과 열정의 지난날’을 건넨다.

인터넷, 스마트폰을 멀리한 채, 글도 종이원고지에 펜으로 또박또박 쓰는 구식, 아날로그 방식의 삶은 그의 글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서울의 강북 지역이 ‘연가’의 중심이다. 종로에서 ‘내 마음의 고향 같은 단골집들’로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 신신백화점 입시학원부터 대폿집 남원집·소문난집에 얽힌 일화를 떠올린다. 미술학도일때 아현동 굴레방다리 부근의 화실시절에 ‘이웃사촌’이던 주점 아가씨들이며, 젊은날의 은밀한 체험담도 공개된다.

인사동 편에는 파리서 돌아와 1988년 이호재 가나화랑 사장과 처음 만난 후 25년간 전속작가로 인연을 맺은 일화 및 작고한 오윤 화가와 천상병 시인, 청기와액자집과 부산식당 등이 등장한다. 이 밖에 을지로, 광화문, 명동, 낙원동, 남산, 장충동, 동대문구, 방배동 등 동네별로 당대의 사회 문화를 반영한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장통의 소문난 맛집 순례기부터 화류계 체험기도 서울의 풍경으로 비중있게 다뤄진다. 중학시절 동네친구들과 그저 둘러봤던 청량리 588, 고교 교복 차림으로 처음 경험한 니나노 술집을 비롯해 막걸리집의 인심 좋은 여주인 이야기까지 그의 ‘서울연가’에는 숱한 서울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인상적인 서울풍경으로 그는 사춘기 시절을 보낸 면목동 망우리 휘경동 등 동대문구 일대, 그리고 김원배미술학원 등지서 그림과 더불어 ‘인생’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광화문 시절을 지목했다. 유년기를 보낸 신당동 시절과 관련해 청계천 다리 밑 뱀장사, 뚝섬유원지 소풍과 창경원 벚꽃놀이 등을 또렷이 떠올리는 등 그는 기억 저편의 옛일을 추억의 명화 속 장면처럼 실감나게 재현해낸다.

서울연가를 통해 서울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고백하는 토박이 화가는 “기억 속의 서울은 황홀하다”면서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웃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