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車 ‘단단’, 일본車 ‘안락’… 한국車 하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준홍(왼쪽) 연구위원 등이 지난 19일 경기 화성시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에서 주행 성능 실험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한국 자동차만의 특별한 주행 유전자(DNA)를 찾아라.’

현대·기아자동차의 주행 성능을 연구·개발하는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의 ‘R&H(Riding & Handling)리서치랩’에 떨어진 현대차그룹 수뇌부의 특명이다. 지난 19일 현대차 남양연구소 R&H리서치랩 실험실에서는 연구원들이 한 대에 수십억 원 하는 주행성능 분석 기계 위에 차량을 올려놓고 실험을 하고 있었다. 차량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주행 상태를 표시하는 다양한 곡선들이 그려졌다. 연구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같은 실험을 반복하며 차들의 주행 특징을 찾아내 분석하고 있다.

박준홍 R&H리서치랩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주행감은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현가장치)이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서스펜션 한 가지만 갖고는 주행감을 분석해 낼 수 없다”며 “서스펜션, 차체 강성(충격과 뒤틀림에 견디는 힘), 타이어, 링크(서스펜션과 차체 연결 부품) 고정력, 엔진 진동 등 수많은 요소를 복합적으로 연구해야 주행감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웬만한 업체들은 잘 달리고 튼튼하고 안전한 차량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동차의 진정한 맛인 ‘달리는 참맛’을 구현하는 글로벌 업체는 드물다. 이것이 바로 프리미엄 브랜드와 일반 브랜드와의 차이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가 전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현대·기아차만의 특별한 주행감을 개발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던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는 현대·기아차의 성공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많다. 독일차의 단단한 주행감과 일본·미국차의 안락한 주행감을 뛰어넘는 한국차만의 주행 특성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현대차그룹 수뇌부와 남양연구소 연구진이 전남 영광의 F1경기장(서킷)에 집결했다. 렉서스가 출시한 신형 모델의 승차감과 주행감을 테스트하기 위해 남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서울과 경기 화성시 남양연구소에서 달려온 것이다. 이들은 시험주행이 끝난 뒤 품평회를 가졌고, 남양연구소 R&H리서치랩 연구원들은 이 차량의 부품을 하나하나 다 뜯어낸 뒤 주행감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을 분석했다.

남양연구소에서는 BMW나 벤츠,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신차를 출시하면 곧바로 구매해 해체 작업에 착수한다. 차량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의 크기와 길이를 재고, 재질의 특성과 강성을 분석한 뒤 이를 계량화해 자료로 축적한다. 남양연구소에서 이렇게 해체 분해하는 최고급 차량만 연간 수십 대에 달한다.

차량의 강성이 높아지면 운전자가 주행 중 차량과 일체감을 느끼는 주행감이 향상된다. 그렇지만 강성을 높일 경우 차량의 무게가 증가하고 원가 부담도 상승된다. 가격 경쟁력을 중시해야 하는 양산형 브랜드가 차량의 강성을 높이는데 한계를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중량과 강성을 동시에 양립하는 기술을 연구해 차기 차량에 적용하기 위한 개발이 한창이다.

현대·기아차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해 있다. 대부분의 중형차의 경우 앞바퀴 서스펜션은 차체와 2개의 링크로 연결(맥퍼슨 스트럿)돼 있고, 3개(더블 위시본)로 연결된 것도 있다. 맥퍼슨 스트럿은 YF쏘나타 등에 적용돼 있으며 구조가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들어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더블 위시본은 그랜저나 렉서스, 벤츠 등에 장착돼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06년 제네시스를 개발하면서 링크를 5개까지 늘린 멀티링크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프리미엄급 차량에만 적용되는 최고의 기술로, 현대차는 이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제네시스 출시를 늦추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한국차만의 주행감을 찾아내는 일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90억 원짜리 주행성능 분석 기계를 추가로 도입하는 등 수백억 원을 선진시험기 구입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는 한국형 주행감을 찾는 투자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는 최고위층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기술력과 충분한 분석 자료가 축적돼 있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한국형 주행 DNA를 개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유병권 기자 yb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