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골라 낳기’… 여성 1억6000만명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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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과잉 사회 / 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1억6000만 명. 지난 2005년 인구통계학자인 크리스토프 길모토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시아에서 과거 몇십 년 동안 자연 출생 성비(性比)인 100(여) 대 105(남)가 유지됐다면 1억6000만 명의 여성이 아시아 대륙에 더 살고 있을 것으로 산출된다는 것. 다시 말해 지난 수십 년간 태어났어야 할 1억6000만 명의 여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바로 초음파와 낙태의 조합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출산 전에 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판별할 수 있게 된 ‘신기술’과 낙태가 결합됨으로써 1억6000만 명의 여아가 ‘지워졌다’. 1억6000만 명이란 수치가 실감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라. 미국에서 여성이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진 상황을 말이다(미국 여성 인구수는 1억6000만 명을 넘지 않는다). 쇼핑몰과 슈퍼마켓, 지하철과 버스, 학교, 병원, 사무실이 모두 남자로만 채워져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끔찍하지 않은가.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성비 불균형의 현상과 원인, 문제점과 향후 전망까지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아시아권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특히 성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한국·중국·인도·아제르바이잔·베트남 등에서 현장 취재와 인터뷰, 통계자료 분석 등을 통해 치밀하게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 우리 앞에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을 펼쳐 보이고 있다.

우선 출생 성비가 불균형해진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경제 발전과 이에 따른 의료기술의 발전이다. 즉 초음파와 낙태의 결합이었던 것. 서구의 첨단 의료산업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여기에 생활수준의 향상 덕분에 첨단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아시아인들이 아들을 ‘골라 낳기’ 위해 초음파와 낙태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시아 개발도상국을 무대로 성 감별과 낙태가 ‘유행’처럼 퍼진 배경에는 서구 선진국 단체들에서 제공한 수백만 달러의 자금과 함께 수천 명의 현장 요원, 수많은 이동 진료소의 지원이 있었다. ‘인구 폭발’을 막기 위한 서구 강대국의 ‘인구 조절 운동’이 아시아 개발도상국을 주 타깃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시아 국가들에서 출생 성비는 이미 1980년대에 한국·대만·싱가포르 등에서 109를 넘어섰고, 인도는 112, 중국은 120에 이르렀다. 저자가 조사한 지역 중 한 곳인 중국 롄윈강(連雲港)에서 5세 이하 아동 성비는 무려 여아 100명 당 남아 163명으로 나타났다. 장시(江西)성 이춘(宜春)에서는 4세 이하 아동의 남성 출생 성비가 137, 광시좡(廣西壯)족 자치구 팡청강(防城港)에서는 153, 후베이(湖北)성 톈먼(天門)에서는 무려 176에 이르렀다.

이처럼 남성 인구가 여성을 훨씬 초과하는 사회는 어떤 위협에 직면해 있을까.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가장 광범위하게 벌어질 사태는, 배우자를 찾지 못한 ‘잉여 남성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한 거래들이다. 여성을 인신매매하는 범죄와 만연한 ‘신부 구매’ 문제는 이미 심각한 현상이 되고 있다.

아울러 남성 과잉 사회의 경우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과잉 사회’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한 사람의 몸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과다할 때의 증상은 잦은 흥분 상태와 공격성, 기본적인 규범 위배 등 반사회적 행동의 증가로 나타난다. 남성 수가 과다한 사회는 마치 폭력범들의 교도소 분위기와 같이 공격성과 폭력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러한 현상들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