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공동체, 이웃이 희망이다>개인 땅·집도 이웃에 개방…‘소통의 마을’ 만들기 한창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6일 일본 도쿄(東京)도 세타가야(世田谷)구에 위치한 육아공동체 ‘루쓰의 집’에 인근에 거주하는 엄마들이 함께 모여 아이들과 놀아주며 육아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급속한 성장을 이뤘지만 이웃 간의 소통이 단절되는 부작용을 겪고 말았습니다.”

지난 12일 일본 도쿄(東京)도 세타가야(世田谷)구에 위치한 다케야마 시민녹지공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후쿠시게 마사유키(69) 씨는 “건물은 늘어났지만 정작 주민들이 쉬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져 갔다”며 “이를 반성의 계기로 삼고 시작된 것이 바로 ‘마을만들기’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후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공원 가꾸기 등 마을만들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후쿠시게 씨는 “마을만들기 운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웃 간 교류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협력해 녹지를 만들고 다양한 행사를 열어 소통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지역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일본어로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라 불리는 마을만들기 운동은 지역주민이 살고 생활하는 장소를 공동으로 혹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에 맞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활동이다. 특히 마을만들기는 녹지 확보 및 도로 정비 등 하드웨어적 관점뿐 아니라 주민 간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지원 활동의 소프트웨어적 관점이 합쳐진 의미다.

일본 내에서 마을만들기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는 도쿄도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약 88만 명, 면적 약 58㎢) 자치구인 세타가야구가 꼽힌다. 세타가야구는 1970년대 과도한 산업화로 환경 파괴와 소통 단절 등의 문제가 불거지자 본격적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했고 현재는 자생적으로 생겨난 다양한 주민단체들이 환경보호와 주민들 간 교류를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세타가야구의 마을만들기 운동에서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은 ‘세타가야 트러스트 마을만들기’(트러스트)라는 단체다. 2006년 세타가야 트러스트 협회와 세타가야 도시정비공사가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이 단체는 서로가 가진 전문성을 통합해 최근에는 다양한 주민 네트워크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트러스트는 마을 곳곳에 사람들이 함께 쉬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늘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트러스트는 세타가야구 내 녹지 및 정원 소유자들과 계약을 맺어 해당 공간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시민공원으로 무료 개방하고 있다. 현재 세타가야구 내 시민녹지 12곳과 작은 숲 10개, 도시 숲 6개, 특별보호구역 4개 등이 시민들에게 쉴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또 트러스트는 단순히 쉴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공간을 주민들 스스로 가꿔나가도록 유도해 지역 주민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역 공생의 집’ 사업이다. 지역 공생의 집은 집주인(소유자)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공익적이고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소로 지역 주민 간 유대를 강화하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의미한다.

지역 공생의 집 사업 중 잘 알려진 곳은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이 육아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루쓰의 집’이다. 본래 2층짜리 단독주택인 루쓰의 집은 개인 소유의 집으로 1층 거실과 정원을 매주 3차례 개방해 영유아(0∼3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집주인이 이웃에 사는 엄마와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사유지를 개방한 것이 시작이었다.

실제로 지난 16일 루쓰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10명이 넘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고 있었다. 루쓰의 집을 관리하는 비영리단체 아미고의 이시야마 교코(38) 대표는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이들이 동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공간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아이들이 어울릴 곳이 없어졌다”며 “루쓰의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퇴색됐던 이웃 간 유대를 회복하고 다양한 육아 정보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타가야구에는 루쓰의 집뿐 아니라 이웃 간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마련된 지역 공생의 집이 모두 12곳이나 운영되고 있으며 종류도 육아뿐 아니라 노인들을 위한 공간, 독서, 요리, 스포츠, 사진 등으로 다양하다.

요시하루 아사노우미 트러스트 과장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계획에 따라 각종 사회 기간 시설 등이 정비됐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공동체의식이나 이웃 간 유대감이 급속히 약화됐다”며 “한국의 층간소음 문제처럼 일본에서도 피아노 소음 때문에 이웃 간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소통이 단절된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너져가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마을만들기 운동은 정부나 지자체가 끌고 가기보다 시민들 스스로 내가 사는 동네 혹은 마을의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통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점을 반영하듯 지난 1월 주식회사 리크루트주거컴퍼니가 관동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흘간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살고 싶은 동네 1위로 세타가야구가 꼽히기도 했다.

도쿄 글·사진 =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