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들 적대 분위기에 백화점 가기도 꺼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손님 없는 고급 매장 최근 고소득층의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28일 부유층 고객이 즐겨 찾는 서울시내의 한 백화점 매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부유층에 대한 따가운 시선 때문에 돈 쓰기가 부담스러워요.”

28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에서 만난 최미영(여·59) 씨는 “요즘 경제민주화다, 세무조사다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분위기에 흥청망청 돈을 쓴다는 소리라도 들을까 봐 되도록 백화점 방문을 자제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손에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잘 차려입은 복장으로 수입 화장품 매장을 둘러보던 그는 “오늘 백화점에 나와서 결국 블라우스 하나 사고 돌아간다”며 백화점 문을 나섰다.

평소 같았으면 손님들로 붐볐을 이날 수입 화장품 매장들은 손님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한산한 분위기였다. 많은 매장들이 손님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거나 그나마 제품을 구경하던 2∼3명의 손님들도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백화점 VIP 라운지에서 만난 조연희(여·50) 씨는 “최근 사회 분위기가 부유층을 적대시하는 것 같아 되도록 조용히 쇼핑을 한다”며 “쇼핑금액도 지난해 4, 5월만 해도 500만 원 이상을 썼는데, 올해는 300만 원 정도로 줄였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새 정부의 고강도 세무조사·비자금 수사 확대 등 사회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부유층의 국내 소비는 줄고 있는 반면, 해외 소비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9일 유통 및 여행업계에 따르면 A백화점의 상위 20% 고객(구매액 기준) 매출은 3월만 해도 전년동월대비 5% 늘었으나 4월에는 2% 감소한 데 이어 5월에도 마이너스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VIP를 관리하는 A백화점 관계자는 “요즘 분위기가 워낙 흉흉하다 보니 큰손들이 평소보다 수십%가량 줄어든 것 같다”며 “이들은 모두 현금으로 제품을 사고 현금영수증이나 포인트 적립 등과 같은 구매이력을 남기는 것을 질색한다”고 말했다.

평소 부유층이 자주 구입해 불황을 타지 않던 고급 주류·의류·가구매장들의 실적 악화도 두드러졌다. 텅 빈 매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매장 직원들은 하나같이 “최근 들어 부유층 고객이 뜸해져 매출이 20∼30%가량 줄어든 것 같아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올여름 해외여행 상품 이용객 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상반기 이용객 수도 지난해보다 적어도 2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 여행사인 하나투어에 따르면 이 회사가 올해로 7년째 개최한 ‘여행박람회’의 올해 해외여행 상품 판매실적은 지난해보다 40%가량 늘어난 120억여 원을 기록했다.

회사 관계자는 “고객들이 주로 여름 휴가를 앞두고 해외여행 상품을 예약했다”면서 “올여름 해외여행 상품 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상반기 해외여행 상품 이용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가량 증가하고, 5월 해외 골프여행 이용객 수는 전년동월대비 27.8%나 늘어난 것으로 회사 측은 추산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예전만 해도 해외여행 상품 이용객의 경우 공개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요즘에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면서 “최근 경직된 사회 분위기로 다들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준영·이관범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