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北이 대한민국 흔든다>헌법 부정하고 3대세습 北찬양…진보 그늘서 자란 ‘독버섯’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국회內 종북’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앞)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소수 종북(從北) 세력이 진보 진영 전체를 뒤흔드는 왜그더도그(Wag the Dog·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 현상으로 대한민국의 진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진보 진영은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종북 세력에 이끌려 다니다가 큰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진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을 진보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을 진보에서 명확히 구분해 내야 진보 역시 미래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이정희(정치외교학) 한국외대 교수는 9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종북 세력은 우리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고 있어 진보라고 할 수 없다”며 “진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 자유, 평등 등의 가치는 제쳐두고 북한이 얘기한 자주, 반미 등이 우리가 나갈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정치학회장인 유호열(북한학) 고려대 교수 역시 “헌법이라는 것은 국가의 기본 틀”이라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당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진보는 기존 질서나 방향에서 새롭고 진전되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종북이나 사회주의는 낡은 질서를 추종하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종북 세력을 이념적으로 진보라고 칭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종북 세력은 ‘남한’의 대안으로서 북한 체제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머무르고 있다. 이미 시대적 생명을 다한 사회주의나 3대 세습과 같은 ‘전근대적 왕조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북한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상적 사고 집단인 셈이다. 특히 우리 헌법의 가치인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에 대한 존중, 자유, 정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북은 진보라 불릴 수도 없다.

신광영(사회학) 중앙대 교수는 “낡고 퇴행적인 전근대적인 정치체제를 추종한다면 진보가 될 수 없다”며 “그건 또 다른 형태의 퇴행적인 보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고 있는 종북 세력이 여전히 진보 진영 내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70∼1980년대 독재 정권에 저항하면서 민주화 세력들은 ‘반정부=민주화 = 진보’라는 틀 안에서 정파적인 구분 없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통칭돼 왔다.

제도적 민주화가 정착되고 난 이후에도 반정부 투쟁을 했던 세력에 대해서는 일단은 온정주의적으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북한을 추종하거나 한국 사회의 혁명을 꿈꾸는 세력들도 계속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한국 정치 지형상 진보의 세력적 기반이 미약하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선거 때 연대가 맹목적으로 이뤄진 측면도 크다. 이현우(정치외교학) 서강대 교수는 “종북은 현실적으로 진보에 스며들어 유리한 입지를 가지려고 해 구분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진보진영은 민중민주(PD) 계열을 중심으로 1997년 건설국민승리21을 창당한 후 2000년 민주노동당으로 재당창하면서 제도권 정치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04년 4월 제17대 총선에서 10석을 획득하면서 대안세력으로서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하지만 민족해방(NL) 계열의 합류를 용인하면서 진보 진영 전체가 늪에 빠지게 됐다.

민노당은 분당 사태 등 몇 차례 종북과 결별할 기회도 없지 않았다.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를 계기로 진보 진영 내에서도 종북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진보 학자는 “일심회 사건 이후 민노당이 분열하면서 진보 진영 내에서 종북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며 “이전까지 보수 진영에서 공격하던 것과 달리 진보 내부에서도 프레임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의 야권연대, 2012년의 총선연대에서 확인되듯이 선거 승리를 위해 종북 세력을 용인하는 경향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유 교수는 “진보가 종북 세력의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적 필요에 의해 야합한 결과가 이번에 불거진 것이다”고 지적했다.

조성진·이화종 기자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