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제, 이제는 사회적 기업이다>북치고 장구치고… 취약계층 2만8000명과 얼∼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소속 풍물패가 지난 19일 서울 양천구 목동 대한민국예술인센터 지하 아카데미홀에서 열린 ‘제27회 예총예술문화상’ 시상식 축하공연 뒤 포즈를 취했다. 인천 =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지난 19일 오후 4시 인천 부평구 십정동 백운고가 인근 낡은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100여㎡(약 30평) 넓이의 국악전용극장인 잔치마당아트홀 공연장. 이곳에서는 인천 출신의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이자 일본 한 사찰 주지스님인 전통무용가 김묘선(여·56) 씨와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단원 등 20여 명이 당일 저녁 개최될 ‘김묘선의 인연’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연습 중간 관중석에 앉아서 잠시 숨을 돌리던 김 씨는 “내가 평생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공연해보기는 처음”이라며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잔치마당 단원들이 인천의 풍물을 살리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 어떻게든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광일(47) 잔치마당 대표는 단원들과 공연 내용을 협의하다 말고 돌아서며 “장소가 협소하기는 하지만 여기가 인천의 풍물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산실”이라며 “잔치마당이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후 이처럼 수준 높은 공연을 자주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 30분이 되자 100여 개의 객석과 복도는 관중으로 가득 찼고 지하 공연장에서는 북, 꽹과리, 대금, 해금 등이 울려퍼지고 승무, 화선무 등의 공연이 절찬리에 펼쳐졌다.

잔치마당은 2010년 5월 국내 풍물패 가운데 처음으로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잔치마당은 이후 홍보, 회계 등의 업무를 분업시키고 단원을 종전의 3∼4명에서 12명으로 크게 늘렸다.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가미 등을 통해 작품성을 높이고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풍물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잔치마당은 장봉도 어민들의 만선의 기쁨을 담은 풍물 ‘배치기’, 장봉도 아낙네들의 노동가인 ‘나나니 타령’, 장봉도 남녀가 한데 어울려서 그물을 손질하면서 부르는 ‘술비타령’ 등을 스토리텔링으로 재연한 작품 ‘인천 아리랑’을 2010년 가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작품은 2012년 인천 펜타포트 음악축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올해에는 국립국악원 별별연희 공모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잔치마당은 5월과 6월에는 인천 아리랑에 연극적 요소를 가미한 ‘인천 아라리’라는 작품으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주, 국제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서 대표는 “인천 아라리는 음악, 연극, 무용, 춤 등을 동시에 아우르는 작품으로 세계 무대를 목표로 기획된 작품이자 인천의 전통 풍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잔치마당은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이외에 풍물의 대중화와 확산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음성꽃동네 등 전국 15곳을 찾아 3000여 명의 취약계층을 포함한 2만8000여 명에게 공연을 선사했으며 수많은 청소년과 일반인을 위한 무료 풍물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잔치마당은 공연 이외에 공연에 쓰고 남은 악기의 재활용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인천 지역 21개 동네 풍물단과 각 학교 풍물단 등에서 사용되다가 망가지거나 찢어진 꽹과리, 장구 등은 모두 3000여 개. 잔치마당은 이들 폐악기를 수거해 12명의 시각 예술인들에게 맡겨 폐악기를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장구 등이 10여 번 공연하고 나면 찢어지거나 파손되는 점 등에 고안해 재활용과 고용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잔치마당은 이들 폐악기를 재생한 작품들을 판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시각 예술인 등이 나눠 가진다.

잔치마당이 이처럼 사회적기업으로 지난 3∼4년간 눈부신 활동을 벌인 것은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기 전부터 오랜 내공을 쌓았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동료 2명과 함께 1992년 잔치마당을 설립한 후 학교와 지역 동호회 등을 중심으로 그동안 4000여 명의 인천 시민들에게 풍물을 무료로 가르쳐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고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음악을 배우는 것은 긍지와 자부심이라는 슬로건 아래 풍물의 생활화와 대중화에 앞장선 것이다.

잔치마당은 또 부평풍물축제 참가자들에 대한 풍물 지도 등을 통해서 인천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풍물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잔치마당이 1996년 부평 삼산동 주민 60여 명에게 풍물을 가르치고 함께 공연한 것이 계기가 돼서 1997년 부평풍물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서 대표는 “인천 부평구 내 21개 동의 600여 풍물단원들에게 무료로 풍물을 지도하고 공연을 도와주다 보니 어느새 지역 주민 대부분이 풍물에 빠지고 풍물이 부평구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기업인 잔치마당의 앞길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우선 내년 5월이면 그동안 사회적기업으로 정부로부터 받던 지원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잔치마당이 정부로부터 매달 받는 일자리 창출 지원금은 400만 원 선이다.

오부자(여·36) 잔치마당 단원은 “사회적기업이 되는 바람에 그동안 다른 문제는 신경 안 쓰고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며 “문화예술 분야는 고정적인 수입을 창출하기 어려운 만큼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 이상원 기자 y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