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new life >탄광 무너져 하반신 마비되자 ‘막장인생’… 이 악물고 再起…재활 박사로 ‘제3 인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3일 충남 천안시 나사렛대 강의실에서 박종균(가운데 앉아있는 이) 박사가 이 대학 인간재활학과 3학년 제자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천안 =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기절했다가 눈을 떠보니 제 몸이 5t 정도의 돌무더기에 깔려 있었어요. 목숨은 구했지만 척수 완전손상 진단을 받고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죠. 그때가 스물여섯 살이었습니다.”

박종균(49) 씨는 광부 생활을 하다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이 됐다. 막장에서 당한 사고로 죽음만 생각하며 알코올의존증, 가정 해체 등 ‘인생의 막장’을 경험한 그는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섰다. 이제 그는 어엿한 재활학 박사로 주당 9시간 대학과 대학원 강단에 선다.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하는 인기 장애인 여행작가이자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이기도 하다. 광부에서 재활학 박사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가고 있는 박 씨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불꽃 같은 의지와 집념이 엿보인다.

박 씨는 1966년 충북 단양군의 농촌마을에서 5남매 중 막내아들로 자랐으며, 강원 삼척시의 전문대에서 자원개발과를 전공한 인연으로 1986년 광부가 됐다. 병역면제가 되는 산업체근무특례보충역으로 막장에서 현장감독 생활을 하던 그는 의무 복무기간이 3개월 남은 지난 1991년 10월 경북 봉화군의 연화광업소 지하 840m 갱도에서 막장 붕괴사고를 당했다. 24시간 누워있던 그는 장애 초기엔 재활치료에 의욕을 보였다. 한 재활 전문가가 그에게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살기 힘든 나라다. 열심히 운동해서 걷든지, 그렇지 못하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라’고 한 얘기를 듣고 자신이 흘린 땀에 목발이 미끄러질 정도로 열심히 재활치료에 임했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반신에는 아무 감각이 없었고 대소변도 기저귀로 받아야 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2년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그는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아파트에서 외출을 하려 해도 급경사 때문에 혼자 다닐 수 없었다. 밤에는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신이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술로 세월을 보냈다. 장애인용 차량을 운전하면서도 술을 마셨다. 차 안에는 먹다 남은 소주병이 굴러 다녔고 음주단속하는 경찰에게도 술에 취한 채 “나 좀 잡아 가라”며 악을 썼다. 우울증을 앓게 된 아내와는 결국 이혼했다. 여덟 살짜리 딸과 다섯 살짜리 아들도 흩어져 살게 됐다.

“요양병원을 다니며 술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하다 문득 맑은 가을 하늘을 보게 됐어요. 내 인생이 너무 허무했고, 귀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병원마다 중증장애인에게 ‘사기를 치던’ 브로커들로부터 산재 장애인들을 보호해주고 싶었다.

1997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편입해 만학의 꿈을 다시 펼쳤지만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1998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편상 5남매 중 막내인 그가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부양해야 했다. 희망 없는 힘겨운 삶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2002년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산업재해 단체에서 활동하며 후일 그의 석·박사 지도교수가 된 충남 천안시 나사렛대 김종인 교수와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활학 박사인 김 교수로부터 ‘우리나라와 외국의 산재보험, 산업재해 단체의 역할’이란 주제의 강의를 들으면서 막막하고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이제야 ‘길’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산업 장해를 당한 사람들의 사회 적응을 돕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08년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학업과 함께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5년 장애인전국체전에서 휠체어테니스 대표선수로 참가하면서 장애인체육회 설립 필요성을 절감했다. 충북지역 장애인체육인들과 힘을 모아 2007년 충북장애인체육회를 조직했고 이듬해엔 충주장애인체육회를 만들었다. 휠체어배드민턴을 하다 현재의 부인 민솔희(40) 씨를 만나 2009년 재혼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헤어졌던 딸, 아들과도 재결합하는 등 가정의 평온을 되찾자 그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해 산업재해인 집단 상담, 산재 예방과 장애인식 개선 강의를 위해 전국을 누볐다.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은 계속 끓어올랐다. 고민 끝에 2010년 나사렛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공부에 정진하기 위해 충주에서 천안으로 이사까지 했다. 3년간의 박사과정 공부는 고투의 연속이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에다 모자란 영어실력, 점점 저하되는 체력 등을 느낄 때마다 ‘10년만 일찍 공부를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중도 장애인을 위한 산재보험체계와 전반적인 재활체계가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는 절박함은 그를 다시 일으켜세우곤 했다. 욕창과 허리통증으로 눕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쓴 박사학위 논문은 척수장애인의 재활시스템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난 2월 13일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를 위한 한국형 전환재활 시스템 모형 개발’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 씨는 “중도 장애인의 재활과 산업재해인의 사회 복귀, 우리나라 중증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 등을 고민하며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현재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조사론’ ‘사회복지행정론’ ‘사회복지실천기술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제자들은 그에 대해 “늘 페이스북, 카톡으로 소통하며 자신의 경험과 조언을 들려주는 멘토”라고 평가했다. KBS 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에서 장애인여행 리포터, 근로복지공단 자문위원, 충남장애인체육회 전문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3번째 인생의 ‘가치’를 찾고 있다. 사회복지사 1급, 직업재활사, 심리상담사, 성격유형 분석(에니어그램) 전문강사 등 총 6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박 씨는 요즘 틈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천안 = 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