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어느 改憲論의 민낯

홍정기/논설위원

헌법을 개정하자는 정치인이 현행 헌법을 지성껏 받들 리 있으랴. 그래도 그렇지, “낡고 녹슨 헌법의 폐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좀먹고 있다”는 말은 심했다. 해도 너무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얘기다. 근간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이제는 개헌이다’의 서문 첫머리에서 작심하고 그렇게 내질렀다. “지금이 헌법에 새 옷을 입힐 때”라고도 했다. 헌법과 새 옷이라…, 넘겨짚건대 새 옷과 대비시켜 ‘법 헌(憲) 법 법(法)’ 아니라 ‘낡은 법, 헌 법’으로 새겨들으라는 주문이리라. 당사자야 오래전부터 개헌을 주창해왔고, 그래서 주위에서 ‘개헌 전도사’라고들 부른다며 흐뭇해지만… 글쎄. 그 책의 초판 1쇄 발행일이 2014년 2월 30일이란다. 2월 30일? 저런…. 현행 헌법의 잘잘못을 가스러지게 얽더니 이 세상 어느 캘린더에도 없는 ‘2월 30일’…. ‘믿거나 말거나’도 아니고, 그것 참.

‘지금은 개헌 말할 때 아니다’고 역설해온 필자로서 그런 실수엔 실소(失笑)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개헌론 민낯은 그 실소 끝까지 금할 수는 없게 한다. 지난달 26일 출판기념회에서 헌법이 썩어 대통령 권력도 썩게 마련이라는 식이라는 지론을 다시 지폈었다 -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갖고 있고 나머지는 대통령에 목을 맨다…1960∼70년대는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는 게 필요했다. 이제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나눠야 한다….”

이 의원은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의 고문을 맡고 있다. 그 자리도 자맥질하는 개헌론 가운데 그의 주장에 힘 실리게 하는 한 배경일 것이다. 출판기념회를 ‘개헌 출정식’으로 치르기 전에 여야 의원 154명이 개헌모임에 참여해 재적 과반수에 이르렀다던가. 그 모임이 개헌 시안을 조문화하기 전에 이 의원의 책은 현행 헌법의 전문과 본문 130개조 그 각 조 각 항을 존치, 개정 보완 또는 추가 의견 등으로 해부해놓고 있다.

그의 분권형 대통령제 헌법 각 조항을 간추리면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그만큼 국회의 권한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가장 두드러진 대목이 국무총리 선임 방식이다. 현행 헌법은 말하자면 ‘대통령의 총리’인데 그것을 ‘국회의 총리’로 바꾸고 그에게 국무회의 의장을 맡기자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한 사람을 국무총리로 임명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대통령은 형식적으로만 임명권을 행사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구상대로라면 장관은 물론 ‘총리의 장관’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4년, 1차 중임 허용’으로 인심 쓴다. 그러면서 유고 시의 권한대행은 우선 국회의장, 이어 의원 수가 많은 교섭단체 소속의 국회부의장 순이다.

또 대법원장·대법관, 헌법재판소장·재판관 그 모두를 국회가 선출해 사실상 장악하게 하면서 내쳐 감사원도 국회 소속으로 바꾼다.

뭐, ‘제왕적 대통령제’가 어떻느니들 해가며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될 일도 안된다는 식으로 현행 헌법을 헐(뜯)어놓고는 그 권력 거의 그대로 국회가 거둬들이려는 것, ‘국회를 위한, 국회의 헌법’으로 돌려세우려는 것이다. 국회 일극(一極)… 그렇다, 천하통일이다.

그러면서 표제만은 분권형 대통령제란다. 국회 일극의 대통령 분권? 앞뒤가 안맞다. 그 내용도 헌법학의 내각책임제와 뭐가 다른지 뒤숭숭하다. 개헌 이전에 개악(改惡)일밖에.

앞으로 의원모임의 개헌 시안이 이 의원류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엇비슷하든지 그 아류로 흐른다면 그것은 국회가 권력을 독점하자는 발상 밖에 안될 것이다. 그들이 6·4 지방선거를 호기로 삼아 개헌 국민투표도 함께 실시한다는 목표까지 다잡고 있다니, 현행 헌법의 3권 분립 대의를 그렇게 헝클어도 좋을…아니, 될 일일까. 하긴 강창희 국회의장이 연초 이래 개헌자문위원회를 주도해왔듯이 지금 짧게는 ‘개헌’을, 좀 길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헌법의 틀’ 운운하는 제반 논의가 한 무늬 한 결처럼 국회 언저리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런 개헌론은 한가한 거기 그 주변의 여유로운 화제일 뿐이다. 모든 권력을 국회로 몰아나가면 대평성대가 예약된다는 게 거짓말임을 국회 주변의 그들 자신이 먼저 그리고 더 잘 알고들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