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덩어리 규제’ 혁파>항공기 500개 부품 바꿀 때마다 ‘稅폭탄’… 관세 1930억 더 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 정비사들이 17일 인천 정비 격납고에서 B777-200 항공기 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인천 =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정부가 고부가가치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려는 항공기 정비(MRO) 산업이 꽃망울도 피어보기 전에 시들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로 세금 폭탄 탓이다. 항공산업 특성을 무시한 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무관세 부품 수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 관세 감면 조치를 올해 말까지로 제한한 탓에 내년부터 2018년까지 늘어나는 관세 부담이 193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현재 자사 정비 수준의 항공 MRO인데도 이 정도의 세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항공기 수리 부품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향후 항공 MRO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더라도 해외 MRO 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란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기 MRO 산업은 항공기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항공사마다 각별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비업체로 인정받는 순간, ‘대박’이 나는 산업인 것이다.

정부도 이 같은 산업 특성을 감안, 항공 MRO 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지난 2월 국토교통부는 대통령 업무보고 때 “노동집약적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인 항공 MRO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전문 정비업체의 국내 공항 유치를 추진하고, 항공 MRO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 2010년 마련한 항공산업 발전 기본계획에는 오는 2020년까지 생산 200억 달러, 수출 1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7위권 항공산업 국가로 도약한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특히 국제공항과 군용기를 활용해 MRO 수요를 창출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지역 클러스터(Cluster)와 연계한 시설·장비 구축 등의 지원을 통해 MRO 전문업체를 지원하고, 중국이나 태국 등의 저임금 MRO에 대응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정비부품(엔진, 항공전자 등)에 연구·개발(R&D)을 집중 지원한다는 방안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야심찬 MRO 육성 계획과는 별개로 항공업계는 관세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는 올해까지 100% 감면된다. 그러나 2015년부터 20%씩 감면율이 낮아지다가 2019년부터는 완전히 감면제가 사라진다. 항공기 부품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인증을 받는 절차도 까다로워 국산품으로 대체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항공기 부분품목은 500개 이상 될 정도로 많고 다양해 관세율은 3∼13%로 폭넓다. 주로 많이 이용되는 부품들은 대체로 3∼8%의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바퀴 고무 타이어만 교체하려 해도 관세율이 5%”라며 “3∼8%나 되는 관세가 붙는 부품을 수입해 정비한다면 세금을 내지 않는 무세로 부품을 수입해 쓰는 다른 나라 MRO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쪽에선 항공 MRO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세금 규제가 생기는 셈이다.

관세 감면제가 일몰되면 항공업계는 당장 2014∼2018년 사이에 모두 1930억 원의 추가 세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자사 항공기 정비 수준 부품을 수입할 때의 세부담 증가분만 감안된 것이다. 항공 MRO 산업이 본격적으로 육성되고 시장 규모가 커진다면 세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정부가 2012년 법 개정을 통해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관세율 감면을 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은 FTA를 이용하면 관세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 항공기 시장을 점유하다시피 한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은 FTA를 위한 가장 기본적 요건인 원산지 증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생산되는 부품들의 원산지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력 항공기 제조사들은 항공기 부품에 대한 원산지 증명을 요구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원산지 증명 요구를 거절하기 일쑤”라고 전했다.

다른 나라들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민간항공기 교역에 관한 협정’에 가입해 민간항공기 제조·수리·개조 등에 사용되는 원자재 또는 부품 등의 관세 및 기타 과징금이 없지만, 우리나라는 가입돼 있지 않다. WTO의 관련 협정에 가입하면 항공 산업 지원 및 육성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항공진흥협회 관계자는 “항공산업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감안해 항공기 부품 관세 감면율 100%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