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시민단체 시대’>각종 시민단체 경력 = 정계진출 예비 코스?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크게 감소한 데는 시민단체에 소속돼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운동가들이 대거 정계로 진출한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시민단체 경력이 정치권으로 가기 위한 ‘예비코스’로 여겨지면서 인재 유출은 물론, 시민운동의 순수성도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31일 국회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시민운동이 사회적으로 호응을 얻기 시작한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때부터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총선에서 전체 당선자 중 59명이 시민단체 활동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이후 지난 16대 총선에서는 총 78명의 시민운동 경력자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17대와 18대 총선에서도 각각 115명, 113명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에 출마한 예비후보 1982명을 분석한 결과 시민단체 활동 경력을 가진 인물이 약 20%에 해당하는 415명으로 조사됐으며, 이 중 100여 명이 당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박원석 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30명에 이르는 시민단체 간부급 인사가 새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문제는 시민운동가의 국회 입성이 기성 정치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보다 ‘시민단체 경력=정치권 예비코스’라는 공식을 만들어내 시민운동 자체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을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특정 정당의 정치인을 배출한 시민단체들이 자의반, 타의반 정파적으로 인식되면서 특정 세력과 정서적 유착 관계를 의심받는 것은 물론, 정당한 비판에도 순수성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난 1990년대 이후 점점 보수화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체제 비판이라는 목적에서 출범한 시민단체 특성상 진보 정치인을 배출하는 단체가 시민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돼 일반 시민의 무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초창기 낙선 운동에서는 도덕성에 기반해 후보를 검증하고 평가했지만 요즘에는 점점 자신들의 의견과 반대되는 후보를 상대로 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특히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운동권 언어’를 ‘일상 언어’로 바꾸지 못한 채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중립적 활동과 멀어졌다”고 비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