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순의 방하 한생각>정치인과 배우

배우는 연기가 직업이다. 자기가 맡은 각종의 배역을 연출한다, 주연도 하고 조연도 하고 단역도 한다. 때로는 착한 역할도 하고 악역도 한다.

정치인들도 연기를 한다. 평소에는 특권층으로 귀족처럼 살다가 선거철이면 서민적 인간형으로 둔갑한다. 평소에 타지 않던 지하철도 타고 평소에 가지 않던 시장도 가고 양노원도 찾는다. 연일 나라를 걱정하고 민생을 걱정하는 대사를 늘어놓고 목소리를 높인다.

배우도 연기를 하고 정치인도 연기를 한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의 연기는 연기라고 하지 않고 <쇼>라고 하는 것일까? 배우의 연기와 정치인의 <쇼>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첫째, 배우는 자기 역할을 자기가 선택하지 않는다. 악역도 하고 선한 역할도 해야 한다. 주인공도 하고 조연도 하고 단역도 한다. 주어진 배역에 충실한 것으로 승부한다. 그러나 정치인은 자기 역할을 스스로 선택한다. 절대 악역을 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역할, 십자가(?)를 지는 봉사자의 역할만 골라서 한다. 그리고 결코 조연을 하지 않는다. ‘내가 꼭 해먹어야 하는 것’이니까.

둘째, 배우의 연기도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정치인의 쇼도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똑 같다.

그러나 배우의 연기는 대중들을 속이지 않는다. 천사 같은 역할을 해도 그 배우가 천사가 아닌 줄 알고 악역을 해도 그 배우가 악인이 아닌 줄 안다. 반면에 정치인들의 연기는 대중을 잘 속여야 한다. 저 살자고 하는 짓임에도, 한 자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임에도 ‘국민을 위한 것’처럼, ‘시민을 위한 것처럼’ ‘지역사회를 위한 것처럼’ 속여야 한다. 대중을 속이는 연기, 그것을 <쇼>라고 한다.

셋째, 배우는 연기에 대한 보상으로서 출연료를 받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연기에는 출연료가 없다. 출연료가 없을 뿐 아니라 흥행에 실패하면 가산을 탕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자리를 하면 ‘대박’이다. 연기의 동기가 다르다. 배우는 출연료를 위한 연기를 하고 정치인들은 권력을 위한 연기를 한다. 권력을 위한 연기를 <쇼>라고 부른다,

넷째, 배우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배역에 완전 몰입하기도 하지만 배역에서 깨어나면 연기임을 의식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분명히 의도적으로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배영순(경세학교 교사/ 전 영남대교수 baeysoon@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