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탈출, 서비스규제 철폐가 답이다>집단 이기주의·政爭에 닫혀버린 ‘첨단 의료’ 성장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원격의료 기기 제조회사 인성정보 직원들이 1일 연구·개발(R&D) 중인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제도 미비로 사실상 국내 판로가 막히게 되자 미국 등 해외 수출에 전념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서울아산병원은 2009년과 20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해외 진출을 타진했지만 2010년 말 철수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도 2010년에 LA에 사무소를 개설했지만 지난해 상반기 철수했으며, 서울대병원도 2012년 뉴욕에 문을 열었던 사무소를 지난해 말 철수시켰다. 의료기관의 해외 영리법인 설립이 제한돼 있어 현지의 영리법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평가받는 존스홉킨스병원은 2009년 인천 송도에 국제병원 건립을 추진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철수했다. 뉴욕장로병원(NYP)도 앞서 2005년 송도에 국제병원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2002년 말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송도에 국제적인 병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까다로운 세부규제에 막혔기 때문이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을 위해 자유롭게 투자를 받아 첨단의료로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는 영리병원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이 같은 국내외 사례는 규제가 발목을 잡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을 의료 서비스에 접목시킬 수 있는 원격의료도 그동안 규제와 의료계 반대 등에 막혀 발목이 묶여 있다가 최근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1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의료산업은 미래 서비스산업의 중심축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의료산업은 높은 규제장벽과 의료계 집단이기주의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의 ‘서비스업 생산성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건업 비중을 100이라고 볼 때 한국은 각종 규제로 인해 79.9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의료기관의 해외 영리법인 설립 허용을 포함한 12개의 의료산업 분야 규제 완화를 정부에 요구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의료기관의 해외 영리법인 설립이 제한돼 있고 합법적 과실송금도 어려워 우회 투자를 유발하고 있다”며 “해외 진출에 한해서라도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허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 서비스의 가격 공개, 의료사고 책임 소재 명시, 외국인 환자 유치에 대한 부가세 영세율 적용 등 외국인의 의료관광 활성화 지원 방안, 병원 수출 전용펀드 구축 등도 포함됐다.

의료 분야 규제는 해외 진출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규제가 대표적인 진입 규제다. 2002년 말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외국인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2004년에는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지만 ‘의료민영화’ 등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인해 세부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2012년 8월에야 통과됐다. 하지만 시행규칙에서도 규제는 여전해 실질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된 시각이다. 경제자유구역의 외국 영리병원은 외국인의 최소 투자 비율이 50%를 넘어야 하고 외국 의사면허를 가진 의사 비율이 10% 이상 돼야 하는 규제, 외국인 간호사·의료기사 등은 일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시민단체와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규제 개선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계가 집단휴진 등으로 반대하면서 논란을 겪었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도 지난 3월 25일 관련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매듭의 실마리가 풀리긴 했지만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많다. 절차상으로 보면 국회 통과가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그간 법적으로 허용됐던 의료인 간 원격의료가 공회전만 하다가 거의 사문화된 점을 감안하면 보다 강력하고 치밀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격의료는 단지 의료기기산업 발전의 계기로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구 고령화로 의료비 부담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잘만 활용하면 치료의 질 제고와 비용 절감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강력한 해결책(솔루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등 해외 다수 국가에서 원격의료 제도가 정착됐고 그 활용도는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 일각에선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에 대해선 수긍하면서도 이를 수행해 나가는 정부의 비전 제시 부족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윤건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미국 정부의 경우 원격의료와 관련, 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한 뒤 의료계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단계적 시행을 해나갔다”며 “우리 정부는 이러한 디테일이 다소 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권·유회경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