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集示法 더 허물지 말라

홍정기/논설위원

귀태(鬼胎), 더 내디뎌 귀태의 법….

지난해 7월 11일 당시 민주당의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귀태’, 곧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인간의 출생’이라 한 이래 ‘귀태’는 가위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귀, 태’ 두 음절은 늘 그의 입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가 또 나서 ‘귀태의 법’도 엄연히 있다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바로 그것이라고 짐짓 목청 높이면 고개 끄덕이는 사람들이 그리 적진 않을 듯싶다.

하긴 박 대통령 취임 1년 때도 그랬다. 살릴 셰티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이 2월 25일 박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대한민국의 인권 상황을 우려” 운운하며 표현의 자유와 함께 집시법을 들먹이던 그때 얘기다. 역시 적잖은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된다는 듯 귀담아 듣(는 체하)고 또 여기저기 퍼날랐더랬다.

법원 안팎도 엇비슷했다. 민노총이 박 대통령 취임 1년에 타이머 맞춰 파업을 기획하고 그 정식 명칭을 ‘박근혜 정권 1년 이대로는 못살겠다 국민대회’로 정할 그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민주, 또 그들끼리의 파업이겠거니들 했다. 그러나 하루 앞서 2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가 집시법 제12조를 좇는 도심(都心) 행진 금지는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와 같이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다정(多情)처럼 순진도 병이다. 내로라하는 형법학자도 “1962년 군사독재 말기에 제정·시행된 집시법…” 운운한다. 말 속에 뼈부터 심은 것이다.

다들 아니다.

집시법을 귀태라고 하는 것은 현행 헌법 전문(前文)의 ‘4·19 민주이념’을 귀태라고 하는 막말에 버금간다. 4·19 후속 민주 정부의 입법이기 때문이다. 1960년 4월 혁명의 열기가 가시잖은 7월 1일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 허정의 이름으로 공포된 법률 제554호 ‘집회에 관한 법률’이 그 원형이다. 본문 딱 3개조였다;

‘제1조(집회의 신고) 집회를 주최하려는 자는 그 목적, 시일, 장소, 회합 예상인원과 주최자의 주소, 성명을 기재한 신고서를 늦어도 집회의 24시간 전에 소할(所轄·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단 종교, 학술, 체육, 친목에 관한 집회와 정당, 단체 등의 역원회(役員會·임원회) 또는 이에 준하는 집회는 예외로 한다.’

제2조는 ‘평화적 시위행렬의 신고’, 제3조는 징역 없는 벌금만의 벌칙 규정이었다.

그 첫 법이 이듬해 5·16 후 ‘집회에 관한 임시조치법’(1961.9.9)으로 대체됐다. 제1조(집회의 금지와 해제)는 지금 읽어도 으스스하다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옥내 집회는 이를 금한다. 1. 경제개발 사업 추진에 직접 관계있는 집회 2. 농사 교도사업을 위한 집회….’

그렇고 그런 세월을 지나 1963년 1월 1일 지금 같은 집시법 시대가 열렸다. 그러니 5·16 직후의 임시조치법부터 헤아려 ‘태생부터 악법’ 운운하는 것은 역사와 진실을 함께 파묻는 단견이다. 더러의 ‘치안형법론’도 곡학이다. 뭐… 집시법은 ‘일반 시민이 다른 시민으로부터 생명·신체·재산 등의 이익을 침해받지 않는 상태, 곧 총체로서의 시민 간 생활질서가 안전하게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반체제적 정치활동, 정권에 대한 비판, 노동운동 등 정부에 대한 장해 활동을 권력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란다, 글쎄. 도대체 언제적 얘긴지…거 참.

그런데 헌법재판소도 국회도 실은 그 언저리쯤이라 싶다.

현행 집시법의 실제 연륜은 10년이다. 2004년 3월 1일 지금 골격으로 거듭나 이후 3차례 수정·가필돼 오늘에 이르렀다. 그 10년 세월의 중간 쯤인 2009년 9월 24일, 헌재는 제10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시간)의 ‘일몰(日沒) 후 옥외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엔 ‘야간 시위’ 부문의 한정위헌을 결정했다. 5년 전 가을과 올 봄의 연타로 제10조는 사실상 다 허물어졌다. 헌재가 5년 전에 설정한 개정시한 2010.6.30을 흘려보낸 국회가 과연 언제 입법권은 자신 몫이라고 챙기고 나설까. 집시법 제대로 만들면 그 집시로 먹고살다시피 하는, 일컬어 시민사회단체 ‘집시’가 걱정인지 늘 저 모양이다. 개악(改惡)하지 않는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 고마워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