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푸드>영양학자 김갑영의 우리 음식 이야기-사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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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만드는 법은 크게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것과 빨간 고춧가루를 넣어 만드는 것, 두 가지로 나눈다. 김치는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고춧가루가 없어 주로 소금절임법에 의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 고추가 등장하기 시작, 김치에 빨간 고추가 양념재료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연지는 배추통김치 중 고춧가루를 전혀 넣지 않고 만든 김치의 한 종류다. 작은 조기와 생멸치액젓, 색색으로 곱게 채썬 고명재료를 섞은 뒤 이미 절여둔 노란 배추속에 넣어 만든다. 사연지는 백김치나 동치미처럼 국물을 많이 붓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배추를 절일 때의 소금과 생멸치액젓으로만 간을 한다.

냉장시설이 없던 예전에는 김치를 오래 저장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연지는 추운 겨울철 정초에 떡국과 함께 주로 먹었고, 귀한 손님상, 특별한 주안상의 안주로 자주 올랐다. 이런 연유로 경주 최부잣집의 ‘내림 백김치’로 잘 알려져 있고 경상도 안동 제사음식에도 들어간다.

사연지라는 이름에는 그 사연이 있다. 300년 가까이 12대에 걸쳐 부를 이어온 영남 일대의 만석꾼 집안인 최부잣집은 가훈이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고 할 만큼 손님들을 즐겨 받았다. 그러다 보니 빼어난 음식맛이 소문났다.

경주 교촌지역에 음식점을 연 것도 그 같은 연유 때문이다. 최부잣집 한정식은 육장, 집장, 멸장, 사연지, 육포 등 20여 가지 반찬을 기본으로 구성된다. 배추백김치와 비슷한 사연지는 만드는 과정이 너무 까다로워 최부잣집에 갓 시집온 며느리들이 무명옷을 입고 삼 년 동안 이 김치만 담근다고 해서 ‘사연이 많은 김치’라고 일컬어졌고, 이것이 ‘사연지’라고 부르는 연유가 됐다고 한다.

사연지를 담그기 위해선 우선 배추와 무를 통으로 절여서 씻어 놓는다. 고명재료로 미나리, 파, 마늘, 생강, 석이, 생밤, 사과, 무 등을 곱게 채썰어 한데 모아 고명으로 만들고 실고추를 넣고 곱게 물들인다. 민어, 조기의 살을 포 떠서 작은 조각으로 썰고, 청각은 손으로 뜯어 놓는다. 대하를 따로 삶아 국물을 내고, 멸치와 무를 같이 삶아 국물을 내어 식힌다.

민어, 조기 살을 배추 속에 넣고 준비한 고명을 켜켜로 속을 넣으면서 끓였다 식힌 대하, 멸치, 무국물을 조금씩 뿌린다. 양념한 배추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 과정에 무도 사이사이에 넣으면서 남은 국물을 붓고 파란 배추 겉잎을 위에 덮어 익히면 된다.

공주대학교 명예교수·전 한국가정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