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순의 방하 한생각>데카르트의 ‘생각’은 자기 생각이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걸 놓고 다시 생각해볼 게 있다. 데카르트의 생각은 과연 자기 생각이었을까? 만약 ‘자기 생각’이 아니라면 ‘남의 생각’으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먼저 <방법서설> 1부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이성즉 양식(good sense)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고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마다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고 나는 믿고 싶은 것이며(I like to believe)
이점에서는 철학자들의 보편적 의견에 따르고자(follow) 한다.

데카르트 철학의 출발은 이성이다. 그런데 그의 이성관은 자기 생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철학자(스콜라철학이다)들의 보편적 의견에 따르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믿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나의 이성을 믿고 나 스스로 길을 찾아가자, 내 생각으로 홀로 가자.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사람처럼 홀로가자’고 했지만 홀로 간 것이 아니었다. 남의 의견을 믿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 다음 <도덕규칙>에 나오는 몇 구절을 보자.

●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에 복종(obey)하고 신의 은총으로부터 배운 종교를 확고하게 견지(holding)하는 것’을 도덕 규칙으로 말한다.

여기서도 침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복종과 견지를 말한다. 복종과 견지를 이성적인 것으로 말한다, 그러면 생각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법률과 관습이 과연 이성적인가를 따질 수 없는 데카르트의 생각은 과연 이성적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내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분별있는 사람들이 보통 실생활에서 갖고 있는 가장 온건하고 극단에서 먼 의견에 따라 내 자신을 이끌어간다는 것이었다...가장 분별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commonly accepted and practised by the most sensible of those people among whom I would be living. I was confident that I could not do better than to follow those of the most sensible people)

여기서도 참 묘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분별있는(sensible)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follow)는 것이다. 나의 이성, 나의 양심, 내 생각은 어디로 가고 자신의 양식에 의한 판단은 없고 가장 분별력이 있는 자, 가장 똑똑한 자를 따라야 한다고 한다,(follow) 그걸 도덕규칙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자기 생각은 없다, 똑똑한 자를 따라가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보다시피 데카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는 아니다.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고 당댄의 종교적 교리를 견지하고 또 당대 사회의 가장 분별력있는 자를 따르는 등 그런 여러 가지 것들에 자기를 잘 구속시키고 있다. 데카르트의 의심과 회의는 그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반경내의 것이었다.

● 페르시아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 사이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마 분별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역시 내가 함께 살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 나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을 도덕규칙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의 도리로서 보편적인가를 따지는 그런 고민도 생각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간명하게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따른다는 거는 도덕적 판단이 아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그걸 데카르트는 도덕규칙으로 이야기한다, 데카르는 이성에 의해서, 인간적 양식(good sense)에 의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내 나라 사람’도 넘지 못했다.

이런 칼럼에서 더 길게 논의할 여지가 없지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가 ‘회의하고 의심한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그의 회의나 의심이란 것은 극히 제한된 반경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명석판명’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의 생각에는 ‘복종’과 ‘견지’와 추종(follow)’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을 정확히 보자는 것이다. 간명하게 ‘데카르트의 생각’에 추종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다시 물어보자. 남의 생각으로, 남의 생각에 추종하는 것으로, 추종하는 생각으로 ‘나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배영순(영남대 명예교수 baeysoon@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