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희망 대신 실망 안겨드려 죄송”

“희망을 주겠다고 했지만 실망감을 안겨 드려 죄송합니다.”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 나타난 홍명보(45) 대표팀 감독은 잔뜩 굳은 얼굴로 사퇴 소감을 밝혔다. 평소 정장 차림을 중요하게 여기던 그와 다르게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그는 중간중간 말을 멈추거나 물을 마시며 평소와 달리 매우 긴장한 모습이었다.

홍 감독은 “오늘로써 이 자리를 떠난다”며 사퇴 의사를 분명히 했다. 홍 감독은 “알제리와의 경기가 끝나고 사퇴 결심을 했었다”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사퇴 의사를 밝혔다면 각종 논란을 피해갈 수 있었겠지만 모든 비난을 다 받는 게 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 모든 능력이 아시안컵까지 가기엔 부족했다”고 뒤늦은 사퇴 발표의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협회와 선수들에 대해서는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이다”며 “모든 지시는 제가 했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유임을 결정한 지 1주일 만에 돌연 사퇴로 돌아선 것은 잇따라 불거져 나온 논란 때문으로 보인다. 홍 감독은 월드컵 전에 경기 성남지역에 부동산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며 투기 논란에 휘말렸고, 3차 벨기에전을 끝내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상황에서 선수단이 호텔 외부에서 음주가무를 겸한 회식을 한 일도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이미 사퇴를 생각했던 시점에서 의기소침해 있는 선수들을 풀어주고 싶어 회식을 기획했다”며 “지금 생각해 보니 경솔했던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투기 논란에 대해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고 훈련에 지장을 주며 땅을 보러 다니지 않았다. 제가 살아온 인생은 그렇게 비겁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지인이 편지를 보냈다. 그 속에는 한국은 월드컵의 자산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면서 “편지를 받고 많이 생각했다. 월드컵에서 얻은 실패를 비롯한 모든 경험들을 협회에 잘 전달하겠다”고 덧붙였다.

홍 감독의 사퇴로 축구협회는 오는 2015년 1월 아시안컵 대회를 앞두고 사령탑 공백이란 부담을 갖게 됐다. 축구협회는 즉각 홍 감독의 후임자 물색을 시작했으나 아직 새로운 후보군을 추리지 못했다. 국내 감독들은 대부분 부담감에 감독직을 고사한 상태이고 현재로선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가능성이 높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