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新 풍물기행’>이곳을 추천합니다… 윤선도 집터∼명동성당, 명동 같지 않은 수더분한 길

먹고 보고 살 것에 대해서는 안내가 넘치는 세상이므로 여기서는 그밖의 것이 혹시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명동에서도 오래된 많은 것이 없어졌고 지금도 부서지거나 교체되고 있는 중이므로 시간여행을 겸한 풍물기행은 어떨까 싶다. 이 일대에서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길 중 하나가 명동성당 정문 앞에서 중앙극장 뒤편 향린교회 쪽으로 내려가는 굽은 내리막길인데, 절반 이상이 훼손된 채 재개발공사 중이다. 명동이면서도 명동같지 않은 이 수더분한 길에 30년 이상 쌓인 개인적인 기억도 배어있지만 이제 폐기 시점을 맞았다. 그 길목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윤선도 집터=명동성당 정문 앞에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 윤선도가 살았다고 한다. 그 집터가 YWCA 정문 옆에 표지석으로 남아있다. 조선의 명장 이순신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중구 인현동 자리와는 불과 1㎞ 거리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전승을 거두고 노량해전에서 만 53세에 전사하던 때, 머지않은 해남 땅 큰아버지 집에 입양되어 간 열 살배기 소년 윤선도는 장성한 이후 정치적 유배와 상경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남 앞바다 보길도를 종착지로 삼아 풍류를 벗하여 84세까지 살았다 전한다.

▲이시영 형제 집터=이제는 합병된다는 한국외환은행의 본점 동편 사잇길을 따라 은행회관에 이르는 언덕길에 이회영과 이시영 형제의 집터를 알리는 기념비가 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자 명문가 집안의 이씨 6형제가 만주에서의 새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이 일대의 노른자위 땅과 재산을 처분하고 50명이 넘는 식솔을 데리고 떠났다고 한다.

▲명동예술극장=일제강점기 극장 명치좌로 탄생했다가 해방 후 1950년대에 국립극장으로 사용되었던 곳. 이 건물을 부수어 상업적으로 재개발하지 말자고 숱한 사람들이 서명 청원을 하여 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게 되었다 한다. 이 극장이 요즘 무대에 올린 연극은 ‘반신(半神)’이라는 특이한 제목이다. 볼품없는 외모지만 뛰어난 머리를 지닌 언니, 천사같이 아름답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동생. 두 사람은 몸이 붙은 채로 태어난 샴 쌍둥이라는 구성이다. ‘신상(新商)’으로 충만한 이 거리에서 ‘신상(神像)’을 느껴보기라도 하라는 뜻일까.

▲명동성당=마지막으로 언덕 위의 성당이다. 극심한 반대 속에 지어졌지만 최고(最高)이자 최고(最古)의 유산으로 남았다. 산책장소는 아니지만, 나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정숙 보행만 한다면 도심에서 이처럼 호젓하게 심신의 산책을 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곳도 드물 것이다. 넓고 조용한 이곳을 한바퀴 돌고 나면 정신이 좀 세척되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이번에 나는 성당 본관 뒤편에 지하성당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기 자그만 통로에는 고해소(告解所)도 있음을 처음 보았다. 흐린 불빛의 그곳에는 ‘기다리십시오’라는 표지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누군가 고해 중인가 보다. 그리고 어두운 입구 구석에 또 다른 누군가 조용히 서 있었다. 고백을 하려고 기다리는 중인가 보다. 명동을 유동하는 100만여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오늘도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