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미래’를 선점하라>브라운관 1등 → 전기車 배터리 1등으로… 新樹種‘쑥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삼남면 삼성SDI 공장에서 직원들이 조립단계로 넘어가는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 21일 울산 울주군 삼남면에 삼성SDI 전기자동차 배터리(2차 전지) 공장 진입로는 가을을 한껏 담은 가로수가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최첨단 산업을 떠올리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마치 대학 캠퍼스에 들어선 듯했다. 사업장이 조성된 지 44년이 흐른 역사가 방문객을 압도했다.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1등 DNA를 이어갈 겁니다.” 이진환 자동차전지 부장이 힘을 주며 건넨 말이다.

이 공장은 당초 삼성그룹 내 전자부문에선 첫 공장인 TV 브라운관 생산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1970년에 브라운관을 처음 생산했고, 한때 세계 1등을 구가했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브라운관은 액정표시장치(LCD)와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에 바통을 넘겨주게 되고, 급기야 2007년 말에는 문을 닫았다.

여기서 미래 산업이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옛 공장 건물을 철거하고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을 지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5대 신수종 사업의 하나로 꼽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의 심장부가 됐다. 2010년 1라인 건설에 이어 지난해 10월 2, 3라인까지 증설했다. ‘브라운관 1공장’이 40여 년 만에 ‘전기자동차 배터리 1공장’으로 진화했다. 브라운관의 옛 명성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이어 가겠다는 삼성SDI의 의지가 ‘1등 DNA 계승’이란 말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배터리 1공장은 폭 60m, 길이 100m의 거대한 4층 구조다. 이곳에서 극판→조립→화성→출하의 4단계 공정을 거쳐 배터리가 만들어진다. 전 공정이 자동화 시스템이다. 이 부장은 “최적화한 국산 기계로 공정을 완성했다”면서 “장비 국산화율이 95%나 된다”고 말했다. 극판 공정은 양극판과 음극판에 각기 활물질을 섞어 바르고 일정하게 눌러준 뒤 잘라내는 작업까지다.

이어 조립에선 얇은 양극판과 음극판, 세퍼레이터(분리막)를 정밀하게 감는 ‘권취(捲取)’ 작업이 이뤄진다. 마치 두루마리 휴지를 감는 작업과 흡사하다. 이를 알루미늄으로 된 사각 캔 안에 넣어 도시락 모양의 배터리 셀이 만들어진다. 배터리 셀에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며 전류를 안정화하는 과정이 화성이다. 최종 검수를 거친 배터리는 출하장으로 옮겨진다.

생산 라인 관계자는 “가장 먼저 설치된 1라인의 공정보다 3라인의 공정은 훨씬 부피나 절차에서 줄어들었다”면서 “이것이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제조단가를 낮출 수 있고, 최종적으로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를 앞당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먼지 등을 막기 위해 유리박스로 차단된 조립단계의 1라인 설비는 어른 키보다 훨씬 높았지만, 3라인 설비는 높이가 어른 키만 하게 낮았다. 그만큼 제품 생산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여기서 생산된 배터리 가운데 세계 최대 용량인 60암페어(Ah) 배터리는 올해 출시돼 인기를 누리고 있는 BMW i3에 탑재된다.

삼성SDI는 BMW그룹과 2009년부터 파트너십을 체결해 협력하고 있다. 삼성SDI의 60Ah 배터리 셀은 동일 부피 기준 업계 최대 에너지 밀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BMW i3 외에도 영화 ‘미션 임파서블4’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타고 나와 시선을 끌었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량인 BMW i8에도 삼성SDI의 20Ah 배터리가 단독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처럼 삼성SDI가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원동력은 4년 연속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형 2차 전지의 경쟁력이다. 경쟁사들에 비해 10년 이상 늦게 2차 전지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차별적인 품질력으로 수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성SDI는 중장기 발전 전략을 세워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과 잇단 공급계약을 체결해 나가고 있다. BMW뿐 아니라 미국의 크라이슬러, 인도의 마힌드라 등과 계약을 체결해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SDI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자동차가 이미 세계 시장을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990억 원 수준이었던 삼성SDI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매출은 2018년 1조38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울산 = 글·사진 오승훈 기자 osh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