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는… 부친 軍복무로 한국과 인연

  • 문화일보
  • 입력 2014-12-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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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는 “처음부터 한국을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많이 사랑하게 됐다”며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할 생각까지 내비쳤다. 다만 전제조건이 달렸다.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 통일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어떻게 잘 관리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었다. 학자의 농담치고는 꽤 진지했다. 그가 한국에서 생활한 1985∼1986년에는 애정보다 긴장감을 더 많이 안고 살았다. “대학가 반미 시위가 극심했고, 길거리를 지나면 심한 욕설과 돌멩이 세례를 받을 정도로 미국인을 향한 노골적인 반감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잠시 외유 뒤 2001년 다시 한국을 찾을 때부터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부산 억양이 느껴지는 그의 한국어 실력은 여느 한국인보다 수준이 높았다. 모국어인 영어를 섞어서 말하지만 꽤 전문적인 용어까지 한국어를 구사했다. 한국어를 배운 지 30년이 다 됐다. 1964년 경북 왜관에 처음 발을 디딘 아버지 덕분이었다. 군목이었던 아버지의 두 차례 한국 근무가 마이어스 교수가 한국 땅을 밟게 된 계기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연세대 한국어학당 유학으로, 다시 한국인 부인을 만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박사 학위 논문도 김일성 북한 주석의 우상화를 설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월북작가 한설야에 관한 연구였다.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뒤 버뮤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다가 독일에서 석·박사를 공부하고, 중국의 메르세데스-벤츠 지점에서 근무했던 마이어스 교수는 4개 대륙에 걸쳐 총 5개국을 유랑한 끝에 “이제는 부산이 내 집이자 고향”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 루르대에서 소련학을 전공한 뒤 튀빙겐주립대에서 북한문학으로 바꿨다. “한국 공부가 더 재밌겠구나 싶던 차에 독일에서 소련학으로 석사를 따자마자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더 이상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소련학 지식을 한국어와 합쳐서 북한을 연구하는 데 써먹을 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전공을 북한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2001년 김동기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로부터 강의 제안을 받고 고려대 전임강사로 4년 근무하다 2006년 동서대로 옮겼다. 학과장을 하면서 사실상 국제대학원 설립을 도맡아 했다.

△1963년 미국 뉴저지 출생 △독일 루르대 소련학 석사 △독일 튀빙겐주립대 북한문학 박사 △메르세데스-벤츠 베이징(北京)지점 근무 △고려대 세종캠퍼스 북한학과 교수 △부산 동서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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