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대한민국 갈등 리포트>허가 받았다 철회 당하자 “규제 탓” 않고 民官팀 구성… 설계변경 계속 11년간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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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미국의 대표적인 전력 회사인 American Electric Power(AEP)는 대규모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오시아나에 있는 와이오밍변전소에서 버지니아주 르노로크 인근 클로버데일 변전소까지 130마일(209㎞)에 이르는 765㎸ 송전선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AEP는 사업 계획 발표 후 1991년 3월부터 1993년 2월까지 미국 산림청과 버지니아주 각종 규제기관에 수많은 허가 및 인증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버지니아주 사단법인위원회(SCC)는 1995년 12월 “전력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라며 AEP에 대해 임시 허가를 내줬다.

AEP, 환경파괴 최소화 기준따라
토지전문가·주민들과 머리 맞대
친환경 제초제 사용·工期 단축
대체경로 제시 등 설계 바꿔 승인

콜로라도 풍력발전소 계획도
주민과 정기적 소통 오해 줄여

美, 소송 보다 ‘중재’‘조정’
갈등확산방지法 만들어 효과

◇사업 동의·허가에만 11년…계획 전면 재수정도 망설이지 않았다 = 그러나 1996년 5월 미국 국립공원청은 AEP의 초고압 송전선로가 연방 정부 보호를 받는 관광구역인 The New River를 가로지른다는 이유로 SCC 등에 사업 허가를 철회할 것을 권고했고, 미국 산림청은 AEP 사업의 문제점을 꼬집은 환경 영향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이 시기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 집회도 잇따랐다.

그러나 AEP는 포기하지 않았다. 허가를 내줬다 번복한 규제기관을 탓하는 대신, 그들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송전선 건설로 인한 환경피해 최소화를 위해 버지니아 공대와 웨스트버지니아주 여러 대학의 토지 이용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구성했다. 이 팀에는 토지 소유주 및 규제기관 관계자들도 참여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일부 주에서는 AEP의 사업에 허가를 내줬다.

그렇지만 SCC는 여전히 AEP의 사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1998년 9월 SCC는 AEP에 와이오밍변전소에서 잭슨페리 변전소에 이르는 대체 경로에 대한 연구 및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이에 AEP는 기존에 설계한 노선을 변경하고 대체경로를 제시했다. SCC는 결국 와이오밍-잭슨페리 구간(90마일·145㎞)에 대한 사업 승인을 내줬다. 미국 산림청도 2002년 12월 새로운 경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발표하고, 송전선로가 연방정부 토지를 통과할 수 있도록 추천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3년 12월 AEP는 송전선 부지 확보와 함께 설계를 마무리했다. AEP는 이 과정에서도 사업 부지에 있는 나무를 최소한으로 벌목하고, 친환경 제초제를 써 부지 훼손을 막았다. 아울러 AEP는 공사기간을 1년 반쯤으로 단축해 공사로 인한 환경 파괴를 최소화했다.

한양대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안영찬 씨는 ‘공공갈등의 관리:미국의 송전선로 사업의 교훈’ 논문에서 “AEP는 각종 규제기관 및 주민 등 모두의 동의와 허가를 받는데 11년을 할애하는 등 인내심을 가지고 규제기관 및 이해관계자를 설득했다”고 분석했다.

◇끊임없는 소통 실시한 GE = AEP의 송전설 건설 갈등 사례와 함께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가장 큰 풍력발전소를 만드는 계획인 Colorado Green Project(CGP)도 미국의 갈등 해소 모범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4년 엔론(Enron)이 초기 사업 계획서를 내고, GE가 이 사업을 본격 추진했는데, 사업 초기부터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특히 주민들이 양분돼 사업자 측은 주민 동의를 받는 등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었다. GE는 차분히 주민들을 설득했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내놨다. 송전탑과 풍력발전소 사이 송전선로를 지하로 매설해 잔디로 덮었다. 지역 주민이 반대하는 구역에는 애초 사업 계획을 바꿔 대체 경로를 마련했다. 또 정기적으로 지역 주민과 대화를 갖고 사업 진행 경과보고는 물론,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미리 알렸다. 소통을 통해 사업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환경 파괴는 없다”는 신뢰를 준 것이다.

◇중재·조정 명시한 미국 갈등 관련 법 = 이처럼 미국에서 공공갈등이 좀처럼 확산하지 않는 이유는 사업자 측의 노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갈등 확산을 막는 미국의 갈등 관련 법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6년 ‘협상에 의한 규칙제정법’(Negotiated Rulemaking Act of 1990)과 ‘대안적 갈등해결법’(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ct of 1996)을 제정했다. 이 법에는 법원에서 소송을 벌이는 것이 아닌 ‘중재’나 ‘조정’ 등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조항을 두고 있고, 대안적 갈등 조정 전문가를 고용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 연방정부 승인은 물론, 사업의 직접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주 정부 승인을 받아야 대규모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미국의 송전선 건설 관련 갈등 해소 사례는 일간지 공고만 내고 사업을 진행하는 등 소통 절차를 소홀히 하고 법적 정당성만 가지고 밀어붙인 밀양 송전탑 갈등 사례와 크게 대비된다”며 “현재는 사업 시작 전 공청회를 여는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더 많이 이뤄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손기은·박효목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