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초기확산 막을 시스템도 있는데도 활용못했다

0.4초 걸리는 방식있는데
“새 시스템 구축하겠다”
초기확산 저지 실패 원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진정을 위해 격리 대상자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보건당국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의 시스템을 이용, 격리 대상자 관리가 가능했으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미 구축된 심평원의 의약품안전서비스(DUR)를 활용하면 격리 대상자를 쉽게 가려낼 수 있지만, 방역당국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초기 방역에 실패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부는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전산망을 활용하면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의 가족 등을 손쉽게 가려낼 수 있지만, 이 같은 사실도 알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자가 격리에 대한 정부 지침을 알지 못했다면 발열, 기침 등의 메르스 증세가 있을 경우 병원을 찾기 마련이다. 이때 병원들은 의심 환자를 격리한 뒤 검사하고 확진 환자로 판명이 나면 음압병동에서 진료하는 등 지역 사회 감염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환자가 격리 대상자인지,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거나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료계 전문가들이 이미 구축된 심평원의 DUR를 활용하자고 제안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DUR는 의사의 중복 처방이나 금기 약 처방을 가려내는 시스템이다. 의료기관에서 약을 처방하면 의사의 컴퓨터 모니터에 약 처방 사실이 뜬다. 약 처방 사실은 의사가 환자 정보를 입력한 후 0.4초 이내에 조회된다. 이 서비스에 병원과 격리 대상자 명단을 넣으면 의료진이 진료 중인 환자와 관련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복잡한 건강보험공단 자료 조회 없이 환자 복약 처방 사실이 바로 조회된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새로운 확진 환자 접촉자 확인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시스템 구축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복지부는 메르스 관련 의료기관 이름과 진료 일자, 격리 대상자를 건강보험공단에서 조회하는 방식으로 바꿔 시행에 들어갔다.

복지부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정보기술(IT)을 이용해 만든 DUR 시스템 등을 외면하고 헛발질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사이에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격리자나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행자부의 주민등록 전산망을 활용하는 것도 확진자나 밀접 접촉자 가족과 동거인을 가려낼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