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前 대통령 국가葬>‘머리는 빌리면 된다’… YS 경청의 리더십

‘소통·포용의 카리스마’… 재평가되는 YS

대면보고땐 “힘들지” 격려도
비서실장과 매일 1시간 대화
자유로운 발언 분위기 조성

손학규 발탁에 주저했지만
“문민통치 위해” 조언에 동의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소통형’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였다. 반대의견을 수용하는데 인색하지 않았고 귀를 열어 상대의 말을 들으며 소통할 줄 알았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참모와 측근들의 지적에 잘못된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YS는 무엇보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소신에 따라 측근과 참모의 말을 듣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문민정부 시절 공보수석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은 심기를 거스르는 이야기를 해도 불편한 내색을 안 했다”고 회고했다. 윤 전 장관에 따르면 언젠가 YS가 결정한 사안을 갖고 청와대 집무실로 올라가서 ‘잘못된 결정’이라고 말씀드리자 “아, 내 생각이 짧았다, 바꾸자”면서 자신의 결정을 번복했다. 윤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은 당신의 체면이나 위신 이런 거 생각 안 하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줬다”면서 “대통령이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참모가 직언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참모들이 집무실에서 ‘대면보고’를 할 때 YS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들지’라거나 ‘고생하는 거 알아’ 등의 말을 건넸다는 증언들이 적지 않다. YS의 공보비서관과 정무비서관을 지낸 박진 전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내 보고 후 어깨를 툭툭 치면서 격려의 말씀을 건네줄 때에는 모든 피로가 싹 사라졌다”면서 “그것을 몇 차례나 겪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청와대에서 매일 한 시간씩 둘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이는 굉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모의 조언을 존중하는 성격은 ‘인사’에서도 나타났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따르면 애당초 YS는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 서강대 교수였던 그를 발탁하는 것에 주저했다. 그러나 김정남 교육문화사회수석이 “문민통치 완성을 위해 이런 진보 인사를 써야 한다”고 조언하자 전격 수용했다는 것. 김 전 수석은 서울대의 핵심 학생운동권 출신이었고, 손 전 지사는 김 전 수석의 운동권 직속 후배였다. 손 전 지사는 보선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대화를 즐겼던 사례는 무수히 많다. 민자당 대표 시절에 술에 취한 기자가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오자 YS는 거실에서 오래 얘기를 나눴다. 기자가 비흡연자였던 YS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계속 내뿜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YS는 싫은 내색 없이 끝까지 기자 말을 들었다고 한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설립 당시에는 동교동 쪽에서 미국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대신 김상현 전 국회의원을 YS와 공동의장으로 하도록 제안했다. 상도동계 인사들이 ‘두 사람이 같은 급이 아니다’라고 반발했지만 YS가 이들을 설득했다. 김 전 의원은 “YS의 결단이 없었다면 민추협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