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제, 사회적 기업 1000개 시대>21년째 일자리·자활터전 제공… 직원 78명 모두 장애인·어르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 직원들이 경북 안동에 위치한 공동체 작업장에서 업무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 제공

이종만 목사 1994년 私財로 시작
봉제공장 세운 뒤 換亂 직격탄
수억대 빚 시달리면서도 버텨내

새싹채소로 사업 바꾸고 급성장
시장반응 좋아 작년 29억 매출
정겨움 가득한 공동체 일터 일궈

장애인과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는 2014년 한 해 2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웰빙 식자재로 주목받는 새싹채소를 재배해 전국 슈퍼와 대형마트 등에 공급하는 사업을 통해서다. 공동체는 지난 1994년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로 출발했다. 벌써 21년째 많은 장애인에게 직장이자 사회생활의 장이 되고 있는 공동체는 설립 당시 이종만 목사가 사재를 출연해 세운 개인 사업장에서 출발했다.

이 목사는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단순히 사회나 정부로부터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스스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금 내는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 이종만 목사가 작업장에서 재배 중인 새싹을 들고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 제공

이 목사는 경북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200평 건물을 임대해 봉제공장을 세웠다.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장이었다. 실질적으로는 장애인 자활자립장이었지만, 재봉 작동에 필요한 전기를 공장으로 들어오려고 하니 사업자등록이 필요하다는 법 규정에 부딪혔다. 뜻하지 않게 사업주가 된 것이다. 그럭저럭 장애인 재활이라는 공익적인 목적을 이어가다가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목사는 “개인 사업체로 시작해 경기가 어려워지니 빚이 3억7000만 원까지 불어났다”며 “현실이 너무 냉혹해 한때 야반도주를 할까도 생각했으나,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생각하면서 견뎠다”고 말했다. 한참 힘든 시기를 버티고 나서 1999년에 접어들자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2001년쯤에는 개인적인 빚을 모두 청산하고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안정기가 오자 이 목사는 회사를 개인 사업체를 넘어 사회로 환원할 방법이 있는지 고민했다. 2002년 사회복지법인 유은복지재단을 설립한 취지다. 나눔공동체에 속한 토지와 공장 건물 등은 당시 공시지가로 6억3000만 원에 달했다. 공동체는 2002년 6월 11일에 경북도에서 사회복지법인 허가를 받은 뒤 경북 지역에서 최초로 최저임금 이상 임금을 지급하는 장애인 근로사업장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봉제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2003년쯤 사업은 다시 갈림길에 섰다.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 저개발 국가와 비교해 경쟁력이 지나치게 떨어졌다. 결국 의류사업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 2004년 5월 의류 사업을 접었다. 이후 공동체에서 근무하던 장애인들과 앞으로 무엇을 해 먹고살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새싹을 수입해 재배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10일 미만의 어린싹은 다 자란 채소보다 영양소가 최소 4∼100배까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 아이템을 새싹 채소로 바꾼 뒤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78명의 직원 중 54명이 중증·발달·청각·뇌병변 장애인이고, 나머지는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다. 공동체는 어르신들이 직장에서 삶의 활력을 얻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 목사는 “공동체에서 장애인과 어르신이 같이 일하니 젊은이들은 부모님 모시듯, 어르신들은 손주들 대하듯 정겨운 분위기가 연출된다”며 “이렇게 일하는 것이 장애인들이나 어르신들의 육체 건강, 정신 건강 모두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밤새 새싹이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보면서 얻는 정서적 안정감도 적지 않다.

이 목사는 “경제적으로 안정된다는 것도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데, 저희 직원들은 저축액이 상당하고, 한 지적 장애인 직원은 아파트를 장만해 얼마 전 결혼을 했다”며 “직원들은 공동체에 들어오기 전과 후 삶이 180도 달라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열정을 갖고 즐겁게 일하다 보니 공동체가 생산한 새싹 상품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4년 매출이 29억 원에 달하고 안동시에서도 제법 규모를 갖춘 기업이 됐다. 이 목사는 사회적기업으로서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장애인 시설이 보호 대상이라는 발상 자체를 버렸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돈을 벌어 부모님과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생계를 꾸리는 이들이 모인 곳”이라며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공동체를 꾸렸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진흥책으로 정부가 경제적, 제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여기에 의지해서는 성공한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2000년대 후반 사회적기업이 주목받기 전부터 일생을 바쳐 공동체의 사회적 목적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제일 밑바닥을 치면 올라가는 일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견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기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면 나중에 접는 일도 쉽게 된다”며 “얼마나 큰 의지를 갖고 버티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